- 건스 앤 로지스 ‘스위트 차일드 오브 마인’ 》
가끔 생각한다. ‘모든 어른은 애다, 어른인 척하는…’이라고.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폴 사이먼도 말했다. “어릴 땐 어른들이 정말 커보였는데요. 막상 내가 어른이 돼보니 알았어. 다들 진지한 척, 어른인 척 하는 거였다는 걸.”
건스 앤 로지스…. 1990년대 초반, 메탈리카나 세풀투라 같은 사회비판적 ‘어둠의 메탈’에 한창 빠져 있던 내게 그들은 몰래 먹는 식용색소 덩어리 불량식품만 한 희열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기도 했다. 맥도널드나 웬디스 햄버거에 소금 듬뿍 친 감자튀김을 곁들여 버드와이저로 목 넘김하고 말버러 레드를 뻑뻑 피워대길 10년은 해줘야 나올 것 같은 ‘간지’를 탑재한 그들.
이들의 1987년 앨범 ‘애퍼타이트 포 디스트럭션’에 들어있는 ‘스위트 차일드 오브 마인’(스위트 차일드)은 단 1초 만에 각인되는 노래다. ‘레레라솔솔라파#라 레레라솔솔라파#라’를 어찌 우리 잊으랴. 슬래시가 손가락 연습 삼아 치다 이 명곡의 인트로로 굳어졌다는, 1∼4번 줄을 오가는 그 기타 운지(運指). 가사 때문인지 미국 TV시리즈 ‘환상특급’의 주제 선율과도 닮은 듯 느껴진다. 말없는 기타는 ‘넌 환상 속의 소녀야’라고 속삭이는 듯. 구불구불한 금발 아래로 말버러를 물었을 게 분명한 더프 매케이건의 방방 뜨는 베이스 라인. 성(性)과 폭력을 주식(主食) 삼는 액슬의 가사도 여기서만큼은 투명해진다. 사랑스러운 연인의 눈에서 어린 시절 파란 하늘을 보는 소년의 것으로. 곡 길이를 5분 55초까지 늘인 후반부의 포효하는 기타 솔로까지 더 말해 무엇 하랴.
‘스위트 차일드’를 극장 스크린을 통해 듣게 될 줄 몰랐다. 미키 루크가 퇴물 레슬러 ‘랜디 램’으로 분한 영화 ‘레슬러’(2008년)의 마지막 장면. 랜디가 연정을 품은 또 다른 ‘B급 인생’, 퇴물 스트리퍼 캐시디는 랜디의 마지막 경기를 보기 위해 달려온다. 캐시디는 ‘파란 하늘을 담은 눈이나 부드러운 머릿결’과는 거리가 먼, 주름이 자글자글한 아줌마다. 예전엔 그녀도 어여쁜 소녀였을 것이다. 사별이 될지 모를 대기실에서의 애틋한 이별 뒤로 ‘스위트 차일드’ 도입부가 페이드인 된다. 캐시디를 등지고 링을 향해 달려 나가는 랜디. 아레나를 메운 관중들의 환호와 랜디의 질주를 뚫고 ‘스위트 차일드’의 청량한 로큰롤 사운드가 마침내 터져 나온다.
‘스위트 차일드’는 미키 루크가 섹시 무비스타의 영예를 뒤로 하고 실제 프로복서로 활동하던 시절 링에 등장할 때 나오던 음악이었다고 한다. 영화 중반, 로큰롤 마니아인 랜디는 “(1990년대) 너바나가 음악을 다 망쳤다”며 울분을 토한다. 거기엔 동의할 수 없다. 시애틀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을 사랑하므로.
그러나 랜디와 미키 루크도 사랑한다. 주름 가득한 캐시디의 얼굴 어느 구석에서라도 루크는 ‘스위트 차일드’를 봤을까? 그랬을 거다.
윤희림 과학자, 로커, 래퍼. 세 꿈 다 못 이뤘다. 심지어 어른도 못 됐다. 안 되면 또 어때. 음악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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