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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구제금융 신청]EU “스페인에 1000억유로 지원”… 위기확산 일단 막았다

입력 | 2012-06-11 03:00:00


스페인 정부가 9일 은행을 정상화하기 위해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하자 EU는 1000억 유로(약 146조 원)를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로존 4위 경제대국 스페인은 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진 뒤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스에 이어 4번째 구제금융 국가가 됐다. 루이스 데 긴도스 스페인 재무장관은 9일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화상회의 후 “은행권 자본 확충을 위해 EU에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며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나 (7월 출범하는) 유로안정화기구(ESM)가 스페인은행지원기금(FROB)에 자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긴도스 장관은 “금융 지원 감독은 국제통화기금(IMF)이 담당한다”며 “이번 지원은 은행에 제한되며 거시 경제적, 재정적 요구 조건을 수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위기 확산 막은 유로존, 벼랑끝 전술 성공한 스페인

유로그룹은 성명을 통해 “지원금은 스페인 은행권의 부족한 자본을 추산한 것이며 최대 1000억 유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1000억 유로는 IMF가 추정하는 것과 일치하는 수준으로 스페인 은행시스템이 필요한 수요를 충족시킬 것”이라며 “IMF는 이번 구제금융의 이행과 감독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구제금융의 뿌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대규모로 이뤄진 은행의 부동산 대출이 거품 붕괴로 부실자산이 된 것이다. 스페인 부동산은 금융위기와 실물경기 위축으로 21%나 하락했다. 은행의 부동산 대출 3070억 유로 중 60%가 부실자산이다. 스페인 은행의 불량채권(3개월 이상 연체)은 3월 말 현재 1480억 유로로 대출총액(1조7685억 유로)의 8.37%에 달한다.

이에 4월에만 350억 유로의 뱅크런(예금 인출)이 나타났고 5월 이후 유출 규모가 더 커졌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5월 17일 16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하향했고 이어 26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5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급기야 피치가 8일 국가신용등급을 3단계나 내리자 스페인은 무릎을 꿇었다.

유로존과 스페인은 ‘윈윈’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로존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여부를 가늠할 재총선 전에 거함 스페인의 불씨를 꺼야 할 절박한 상황이었다. 스페인은 EU의 스페인 은행에 대한 직접 지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국채 금리가 상승하고 그리스 상황에 따른 불확실성의 우려가 높아지는 와중에 가혹한 긴축 없이 돈을 받게 됐다.

○ 국가에 대한 첫 제한적 구제금융

긴도스 장관은 구제금융을 언제, 얼마나 요청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이달 중 있을 스페인 은행권에 대한 독립기관들의 감사 결과 발표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페인 은행권을 둘러싼 의구심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규모 이상을 요구할 것이며 대출 조건도 현 시장금리보다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MF는 11일 스페인 은행 조사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고 두 곳의 민간 컨설팅업체가 21일경 스페인 은행 감사 결과를 내놓는다. 유로존이 언급한 1000억 유로는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이른다.

지원방식은 ESM 등이 은행만을 위해 FROB에 자금을 빌려주는 제한적 지원이라는 점에서 기존 구제금융과 다르다. 물론 FROB가 정부기구여서 지원금과 이자는 공공 부채와 재정적자에 반영된다. 스페인 국가 부채는 GDP의 68.5%(2011년 말 기준)다. 최종적인 상환 책임도 스페인 정부가 진다.

그렇지만 기존의 구제금융 지원국과 달리 재정개혁 등 긴축 조건들이 없다. 긴도스 장관은 “우리가 요청한 금융지원(financial aid)이지 구제금융(bailout)과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자금을 직접 받는 은행들만 EU 감독관의 조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 구제금융 국가와 비교하면 엄청난 특혜인 셈이다. 유로그룹은 “스페인은 경제개혁과 재정 긴축 등을 충실히 이행해왔고 최근 IMF가 직접 방문해 스페인 금융 구조조정 이행과정도 점검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더 좋은 조건에서 금융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스페인 위기의 주변국 전염과 유로존 위기 확산의 우려를 이용하는 벼랑 끝 전술을 사용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1000억 유로 정도로는 스페인의 위기를 진화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루비니 글로벌 이코노믹스의 메건 그린 유럽책임자는 “스페인 은행권은 최대 2500억 유로의 자금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스피로 소버린 스트래터지의 니콜라스 스피로 대표는 “스페인은 건너지 말았어야 하는 루비콘 강”이라며 “스페인에 대한 제한적 구제금융은 시장 신뢰 회복에 실패할 뿐만 아니라 다음 단계에 더욱 많은 지원액이 필요하다는 우려를 키우고 이탈리아에 더 큰 압박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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