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버지니아 주 몬티첼로의 가족묘지에 묻혀 있다. 제퍼슨의 유언에 따라 그의 묘비에는 독립선언서 기초, 버지니아 종교자유법 입안, 버지니아대 설립 등 3가지 업적이 새겨져 있다. 국무장관 부통령 대통령을 지냈던 ‘3관왕’ 이력은 없다. 민주 국가의 핵심은 행정부가 아니라 의회라는 그의 신념이 반영된 묘비명이다. 1994년 사망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 요바린다의 생가 뒤에 있는 정원에 묻혔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자신을 탄핵한 의회가 못마땅했던 닉슨은 의회와 가까운 알링턴 국립묘지로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묘지는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 있다. 링컨은 켄터키 주 출신이지만 스프링필드에 변호사 사무실을 내고 정치 기반을 쌓았다. 일리노이 주 곳곳에서 ‘링컨의 땅(Land of Lincoln)’이라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일리노이 주에서 나고 자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북쪽의 시미밸리에 영면(永眠)하고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했고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인연이 있다. 고인(故人)이 된 39명의 전직 미국 대통령 중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은 윌리엄 태프트, 존 F 케네디 두 사람뿐이다. 케네디의 무덤은 봉분도 비석도 없이 땅바닥의 네모난 돌판 하나가 전부다.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89년 망명지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필리핀 정부는 그의 시신을 고국으로 옮겨올 수 있게 허락했지만 국립묘지에 안장해 달라는 가족들의 요구는 거부했다. 반발한 가족들은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방부 처리해 고향 마을에 ‘전시’했다. 줄다리기는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을 수사해 달라는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사돈에게 맡긴 비자금이 알려진 것 외에 424억여 원 더 있다고 검찰에 진정했다. 그가 이 돈을 돌려받으면 비자금 사건으로 부과된 추징금 2628억 원 중 미납한 231억 원을 낼 수 있다. 와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이 추징금을 완납해 사후(死後) 국립현충원에 묻히기를 바란다는 얘기가 주변에서 나온다. 양택(陽宅)에서 잃은 명예를 음택(陰宅)에서 되찾겠다는 뜻이리라.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