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으로 유럽 재정위기는 일단 큰 고비를 넘겼지만 위기 해소 국면에 이르기까지는 첩첩산중이라는 관측이 많다. 구제금융의 규모도 정해지지 않은 데다 이를 통해 스페인 등 남유럽의 경제가 회복될지도 미지수다. 당장 17일 그리스의 총선 결과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선이 쏠려있는 등 도처에 불확실성이 지뢰밭처럼 깔려있는 형국이다. 11일 국제금융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앞으로 유로존 위기의 전개 방향은 대략 세 갈래로 나눠볼 수 있다.
○ 세 가지 시나리오
①시장의 안정=스페인 은행들에 대한 구제금융이 충분한 규모로 이뤄지고 스페인 정부의 금융권 구조조정도 시장의 신뢰를 얻는다. 유럽연합(EU)의 경기부양책이 국제사회의 공조와 함께 순조롭게 진행돼 잔뜩 망가져 있는 스페인 경제도 개선될 조짐을 보인다. 현재 6%를 넘는 스페인 국채 금리는 3∼4%대로 낮아진다. 다만 여기엔 새로 들어설 그리스 정부가 긴축을 받아들여 전체 글로벌 금융시장이 안정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최선의 시나리오다.
③유로존의 파국=스페인 구제금융의 규모가 시장의 기대보다 작고 국제사회에서도 이렇다 할 공조가 안 나올 경우다. 결국 스페인 위기가 은행에 그치지 않고 재정에까지 번져서 국채 발행이 어려워진다. 은행이 아닌 정부에 구제금융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파국 국면은 이탈리아로 확산되고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압력이 가중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 최대 변수는 그리스
전문가들은 3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위기 해결이 지지부진하고 크고 작은 위기가 반복되는 ‘중간’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유로존의 문제가 워낙 오랜 기간 누적돼 온 만큼 응급 처방으로 간단히 해결될 성격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파국은 막아보겠다는 각국의 의지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수는 그리스다. 만약 EU의 긴축 프로그램을 거부하는 좌파 정당이 집권하게 되면 스페인 구제금융 결정으로 가까스로 회복된 시장 심리가 다시 곤두박질칠 수 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장은 “스페인이 긴축을 강제하지 않은 파격적인 조건에 구제금융을 받는 만큼 이에 대한 그리스의 여론이 악화되며 선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 ‘한국 정부는 조심스러운 낙관론’
정부는 스페인 구제금융이 예상보다 신속히 결정돼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은 11일 자금시장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스페인 구제금융 신청 후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와 유로화 등이 전반적으로 강세를 보이며 시장이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그리스 총선 이전까지는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지난주부터 가동된 집중 모니터링 체제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