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진’이 ‘청구서’로
A 씨 가족은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을 받으려고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했다. 행사장에서 낯선 인물이 다가왔다. “시상식 사진을 보내줄 테니 계좌번호와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A 씨는 경황이 없었던 데다 주최 측인 동아일보 관계자인 줄 알고 번호를 알려줬다.
며칠이 지나 A 씨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사진을 보내야 하니 집 주소를 알려주세요.” A 씨는 무료로 보내주는 걸로 생각하고 고마운 마음에 주소를 알려줬다.
택배상자는 9일 도착했다. 액자에 넣은 3장을 포함해 모두 6장의 사진. 기쁨도 잠시, A 씨는 영수증을 보고 깜짝 놀랐다. 36만 원이 적힌 영수증이 은행 계좌번호와 함께 들어 있었다. A 씨 가족은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업체는 “좋은 일이라서 보냈다. 36만 원을 보내 달라”고 말했다.
A 씨의 남편이 오히려 사정했다. “우리 가정은 (이 정도 액수의) 사진값을 줄 만큼 형편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다문화상 상금을 받으면 이 고비를 헤쳐 나가보려고 공모에 응한 거예요.” 하지만 업체는 “정 부담스러우면 (돈을) 조금이라도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사정은 다른 수상자도 마찬가지였다. “사진을 보내줄 테니 e메일 주소를 알려 달라”는 낯선 인물을 B 씨는 동아일보 기자로 잘못 알고 “감사합니다”라고 인사까지 했다.
그가 다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도 11일 택배상자가 도착했다. 역시 액자 3개와 사진 2장, 34만 원이 적힌 영수증, 은행 계좌번호. B 씨는 말했다. “복잡한 말은 잘 몰라요. 사진을 보내준다고 하길래 너무 고마워서 그냥 ‘감사하다’고 말했어요.”
결혼이주여성들은 업체의 상술에 익숙하지 않아 난감해했다. 반면 같은 수상자인 한국인 C 씨는 처음부터 딱 잘랐다.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서 ‘사진 잘 나왔어요, 보내드릴게요’ 하더라고요. 큰 행사에서 마음대로 사진을 찍고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절했어요. 순진한 결혼이주여성들은 속았을 거예요.”
기자는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묻자 직원은 “누가 그런 말을 (기자에게) 하더냐”는 말부터 했다. 이어 “수상자들이 원하면 사진을 보내주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 왜 택배를 먼저 보내고 비용을 요구했느냐”고 기자가 물었더니 이 직원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해와 배려를 강조하는 다문화상 시상식 뒤에 이런 일이 생겨 씁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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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