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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의 ‘광고 TALK’]커플룩과 ‘미니미 토크’

입력 | 2012-06-13 03:00:00


김병희 교수 제공

아이와 똑같은 패션으로 나들이하는 엄마들이 부쩍 늘었다. 모자, 티셔츠, 헤어핀, 헤어밴드, 봉봉 슈슈, 캐주얼백, 숄더백, 커플 플랫슈즈, 러버 부츠, 운동화, 우산. 엄마와 아이가 함께 쓰는 커플 아이템이다. 엄마와 아이가 똑같은 패션을 하면 연인의 커플 룩처럼 다정해 보이기 때문일까? 정서적 유대감이나 친밀감을 과시하려는 심리도 있을 터. 엄마와 딸의 나들이 풍경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제생당약방의 청심보명단 광고(동아일보 1920년 4월 14일)를 보면 일제강점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겨운 나들이 장면이 등장한다. 엄마와 딸의 대화 형식으로 전개되는 보디카피를 보자. “모: 복희야 그 꽃은 왜 따느냐, 여: 어머니 이 꽃에 향취가 대단해요, 모: 그러면 그보다 더 향기로운 것을 사주랴, 여: 그것이 무엇이야요 그런 것을 사주서요, 모: 청심보명단이란다 가서 사줏게 이러나거라, 여: 그 청심보명단은 어대서 제조하난 것이야요, 모: 남대문 안 태평통 제생당에서 제조하고 각처 양약국에서 다 판매하느니라.”

청심보명단(淸心保命丹)에는 마음을 맑게 하고 생명을 보전하는 약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광고에서는 약의 특성을 직접 자랑하지 않고 아이의 질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어디서 제조하느냐고 아이가 묻는 대목은 부자연스러워 웃음밖에 나오지 않지만, 효능을 직접 설명하던 그 시절 다른 광고들에 비하면 ‘말 맛’이 돋보인다. 마무리 부분에서는 ‘상화(賞花·꽃놀이) 산보에’ ‘원족(遠足·소풍) 운동에’ ‘정신피로에’ 좋다며 운을 맞춰 강조했다.

나들이 장면을 섬세하게 묘사한 그림 솜씨도 이 광고를 돋보이게 한다. 엄마와 딸의 치마와 신발이 똑같은데, 이른바 ‘미니미 룩(mini-me look)’의 초기 형태. 지금 아동복 시장에서는 엄마와 딸, 그리고 아빠와 아들 사이에 어른의 옷을 아이용으로 축소해 똑같은 패션으로 입는 미니미 룩이 인기다. 그렇지만 룩보다 더 중요한 것이 대화다. 잘못하면 말없이 걷기만 하는 맨송맨송한 패션이 되기 쉽다. 룩 자체에만 신경 쓰기보다 이 광고에서처럼 부모와 자식 간에 더 많은 수다를 떨어야 한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그걸 ‘미니미 토크(talk)’라 부르면 안 될까?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