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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서울 혜화문(동소문)

입력 | 2012-06-16 03:00:00

이름 바꿨고 신작로에 밀려 사라지고… 근래 복원됐지만 이미 길잃은 문 신세




서울 종로구의 혜화로터리에서 동소문로(東小門路)를 따라 낮은 언덕을 오른다. 그런데 도로 이름대로라면 이 길 어딘가에 있어야 할 듯한 동소문이 선뜻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그 대신 망루처럼 높은 축대 위에 떡하니 서 있는 커다란 건축물 하나가 보인다. 그 이름은 혜화문(惠化門). 1994년에 다시 만든 동소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동소문의 끝없는 설움

혜화문은 서글픈 역사를 지녔다. 이 성문이 처음 지어진 1397년에 붙은 첫 이름은 홍화문(弘化門). 조선의 수도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석성(石城)의 통행문으로, 4대문(大門) 중 북쪽 문(숙청문·肅淸門, 나중에 숙정문으로 개칭)과 동쪽 문(흥인문·興仁門) 사이에 낸 4소문(小門) 중 하나였다. 그래서 동소문이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1483년 창건된 창경궁의 동문 이름이 홍화문으로 정해지면서, ‘설움’이 시작됐다. 창경궁의 문에 왜 이미 있던 성문의 이름을 갖다 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같은 이름의 두 문이 공존하며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결국 30년 가까이 지난 1511년, 동소문은 ‘은혜를 베풀어 교화한다’는 뜻의 ‘혜화’란 새 이름을 가지게 됐다. 풍수지리에 의해 정북문(숙청문)이 사실상 거의 폐쇄되다시피 한 관계로 혜화문은 한양에서 의정부와 포천으로 가는 중요한 통로 구실을 했다. 당시 문을 지키던 병사의 수도 대문급의 병력인 30명이나 됐다고 하니 그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결정적인 고난이 닥쳐왔다. 경성부 확장이라는 명분 아래 총독부가 새 도로를 내면서 혜화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만 것. 다행히 반세기가 지난 뒤 성곽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다시 복원됐지만, 그 위치도 다르고 편액의 글씨 등 작은 오류들도 있어 혜화문의 설움은 끝이 없는 듯하다. 게다가 과거의 흔적이 어디에도 섞이지 않아 ‘연륜’도 느껴지지 않는데, 성문마저 늘 굳게 닫혀 있다. 자고로 다리는 건너봐야 알고, 문은 지나봐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농민들의 삶을 보살폈던 봉화

한 바퀴를 빙 돌아, 끊어진 성벽 옆에 작게 만든 계단을 겨우 찾아 올라간다. 그리고 성벽 위를 따라 혜화문 안쪽에 다다랐다. 안쪽 닫힌 성문 위로 홍예개판(虹霓蓋板·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문의 상부에 덮는 판자)에 그려진 봉황이 보인다. 보통 성문에는 용 그림이 많은데 혜화문에는 봉황을 그려 넣은 것이 특이하다. 옛날 혜화문 밖으로는 넓은 분지와 함께 오래된 소나무 숲이 가득했고, 도화동이라 불릴 정도로 복숭아나무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새들이 많아 농사에 피해가 커 새들의 ‘왕’인 봉황을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서울의 옛 풍경들이다. 문득 이 문을 열고 나가 지금의 삼선동 일대에 드넓게 펼쳐진 솔숲을 걷는 상상을 해본다. 짙은 녹음의 서울, 그리고 복숭아 향기. 이내 그 꿈같은 풍경이 굳게 닫힌 문과 그 틈 사이로 비치는 회색빛 아파트 숲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때 이른 무더위 속 서울에서는 성문 너머 도시의 아우성만이 아득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