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라 드 렘피카,‘녹색 부가티를 탄 자화상’. 1925년.
그런데 실제로 운전을 해보니 저는 굉장히 대담하고 성질 급한 운전자라는 걸 깨달았어요. 인터넷에 떠도는 ‘김 여사 시리즈’를 보면 꽤 찔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초보 주제에 끼어드는 것도 황송한데, 일단 차로를 바꾸겠다고 마음먹으면 3초 안에 실행해버리니 이건 아예 방향지시등이 아니라 방향경고등이지 않나. 갑자기 딴생각에 빠져 역주행을 한 적도 있었고, 트렁크에서 물건을 꺼내고는 트렁크 닫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달린 적도 있었지요. 길을 잃어 고속도로로 잘못 진입해서 진땀을 흘리며 운전하다 에어컨을 켠다는 게 얼떨결에 히터를 켜고 ‘사우나 운전’을 했던 적도 있고요.
그러다 기어이 일이 터졌어요. 어느 비 오는 날 저녁에 어머니와 딸을 태우고 가 저녁식사를 한 뒤 주차장에서 차를 뺄 때였지요. 시동을 걸고 후진기어를 넣었는데 갑자기 차가 앞으로 미친 말처럼 튀어나가는 거예요. 앞에는 산을 깎아 만든 축대였는데, 놀란 저는 ‘멘붕’ 상태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시동도 끄지 않은 채 차에서 뛰어나왔어요. 어머니와 딸도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왔고요. 차가 축대에 자해하는 짐승처럼 머리를 짓찧으며 으르렁거리는 걸 보다가 정신을 차려 시동을 껐을 때는 차가 반파되어 있었어요. 그나마 축대 앞에 세웠으니 다행이지 반대편은 낭떠러지라 추락했을 수도 있었지요. 갑작스럽게 일어난 그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어요. 혹시 급발진 사고가 아닐까? 하지만 초보운전인 제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거란 생각에 입도 벙긋하지 못했지요.
‘부가티’라는 차는 알고 보니 가격이 수십억 원 하는 세계 최고의 이탈리아 자동차더군요. 거의 100년 전에 여성이 이런 차를 운전했다는 것이 유럽에서도 화제가 되었겠지요. 그러나 저는 차종엔 관심 없고 이 여성의 표정에 매혹되어 버렸어요. 이까짓 운전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거만하고 당당하지만 묘한 섹시함과 권태와 고독이 어우러진, 저 뇌쇄적인 반쯤 감은 눈. 세상에! 어쩌면 ‘쫄지’ 않고 저런 눈빛으로 섹시하게 운전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언제나 저렇게 우아한 표정으로 운전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부럽기만 했지요.
그래도 운전할 땐 ‘쫄지’ 않는 것보다 ‘졸지’ 않는 게 훨씬 중요하겠지요. 운전 중 방심은 절대 금물이니까요.
권지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