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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문재인 손학규, ‘국민 대통합’ 스스로 깰 건가

입력 | 2012-06-18 03:00:00


황호택 논설실장

민주통합당 박선숙 전 의원은 1997년 DJ(김대중 전 대통령) 대선캠프의 부대변인으로 이슥한 밤에 군고구마를 싸들고 언론사 정치부를 돌았다. 그만큼 언론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현실 정치인이다. 박 전 의원은 이달 초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동아 조선 중앙의 독자도 우리 국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맘에 안 든다고 만나지 않으면 세 신문이 아니라 그 독자인 국민까지 포기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뒤집어보면 3대 신문의 독자를 ‘우리 국민’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최소한 소통 대상이라고 보지 않는 기류가 민주당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 전 의원은 종합편성채널(종편) 출연과 관련해 “미디어법 날치기에 반대한 이상, 그 결과로 만들어진 종편과 인터뷰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아요”라면서도 “그 문제도 일정 시간 지난 다음에는 다시 정해야겠죠”라고 말했다. 미디어법 ‘날치기 무효’를 주장한 민주당으로서 종편 출연까지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의회민주주의의 룰을 존중한다면 국회에서 다수결로 통과되고 헌법재판소의 유효(有效) 결정을 받은 법을 부정하는 태도를 오래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내리 3선을 한 조경태 의원은 17일 채널A의 ‘대담한 인터뷰’(동아일보 배인준 주필 진행)에 출연해 대선 출마의 변을 밝혔다. 민주당에 종편 출연 금지의 확실한 당론이 있다면 조 의원을 징계해야겠지만 민주당에선 아무도 그를 제재(制裁)하지 않는다. 채널A의 인기 높은 시사토크 프로그램 박종진의 ‘쾌도난마’엔 민주당의 우윤근 안규백 이윤석 김경협 민병두 황주홍 의원이 출연했다.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은 채널A 출연 문제를 놓고 아들(정호준 의원)과 의견을 나누다 “싸우려면 정권하고 싸워야지, 신문 방송과 싸우는 것은 슬기롭지 못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조경태 김부겸 정대철 종편 출연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올 1월 중순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다시 집권해 종편을 바로잡아야 한다. 주파수를 회수하는 방법이 있겠고, 여론 다양성과 품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방송통신위원회를 다시 만드는 방법이 있겠다”고 말했다. 지상파와 달리 종편은 케이블 방송이어서 회수해갈 주파수가 없다. 방송사업자는 3년마다 방통위의 재심사를 받지만 권력이 바뀔 때마다 입맛에 따라 방송을 죽이고 살리면 언론자유가 있는 나라라고 할 수가 없다. 민주주의가 불완전한 러시아의 푸틴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이 대표가 말하는 방송의 다양성과 균형을 갖추자면 지상파 공룡의 독과점부터 규제할 일이다. 자신들이 태어나는 걸 원하지 않았던 아이라고 해서 걸음마도 하기 전에 숨통을 끊어놓는 것은 ‘종편 영아살해’에 해당한다. 종편을 잘 길러서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미디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고, 지상파의 독과점 횡포에 고사해가던 한류 콘텐츠 제작사를 지원하며, 방송의 다양성과 건강성을 고양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진보(進步)의 가치에도 부합한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14일 대선 출정식에서 “정치통합으로 증오의 시대를 마감하고 포용과 화합의 새 정치를 열겠다”며 국민을 하나 되게 하는 통합 대통령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의원은 어제 출마선언문에서 “네 편 내 편, 편 가르지 않고 함께 가는 진정한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손 고문의 ‘대통합’이나 문 의원의 ‘편 가르지 않고 함께 가는 나라’는 결국 같은 말이다. 그러나 진영 논리에 갇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면서 국민 대통합 깃발만 높이 든다고 사람이 모이지는 않는다. 특히 문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편 가르기 언론정책이 국민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킨 사실을 겸허히 성찰하면서 노무현을 넘어서는 화해와 통합의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반대자 설득하는 게 소통 정치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대표적인 진보 언론이다. 아버지 조지 부시나 아들 조지 W 부시가 대선에 나왔을 때 번번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을 지지하는 사설을 썼다. 아들 부시는 유세장에서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뉴욕타임스 기자를 향해 “asshole(똥구멍 같은 자식)”이라고 욕하다 들켰다. 그런 부시도 백악관에 들어가서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하고 뉴욕타임스 기자를 전용기에 꼭 태우고 다녔다. 신문 논조가 맘에 안 들어도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자면 반대자들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채널A에 두 차례 출연한 김부겸 전 의원은 “민주당이 지지층하고만 소통하는 자세는 당당하지도 않고 선거 전략으로도 현명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나꼼수류하고만 소통하다 총선을 망쳐놓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박선숙 전 의원의 말대로 “일정 시간이 지난 다음에 종편에 대한 방침을 다시 정해야 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