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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 사이비 종교 빠진 주부의몰락

입력 | 2012-06-19 21:05:00


3월 전북 부안에서 두 딸을 살해한 엄마가 '기계교(敎)'라는 실체도 없는 사이비 종교의 꾐에 빠져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엄마가 믿었던 '기계교'는 딸의 친구 엄마가 '질투심'으로 조작해 낸,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짓이었다. 그러나 이 엄마는 황당한 지시에 따라 돈을 바치고 딸들을 학대하다 생활고에 못 이겨 살해하고 말았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김현석 부장판사)는 19일 자신의 두 딸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 기소된 권 모 씨(38·여)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권 씨는 3월 전북 부안의 한 모텔에서 자신의 첫째 딸(10)을 욕조에서 익사시키고 둘째 딸(7)을 베개로 질식사 시켰다. 권 씨에게 이러한 믿음을 심어주고 1억여 원의 돈을 뜯어낸 혐의로 구속된 양 모 씨(33)는 "권 씨의 딸이 내 아들(10)보다 똑똑한 것 같아서 모든 일을 지어낸 것"이라고 밝혔다.

19일 법원 등에 따르면 권 씨와 양 씨는 자녀의 학부모 모임에서 알게 됐다. 권 씨는 세상 물정에 어둡고 남의 말을 잘 믿는 사람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이렇다 할 직장을 얻지 못하고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의 벌이는 한 달에 150만원 남짓이었지만 권 씨는 두 아이를 키우며 소박하게 살았다.

평범한 주부였던 권 씨의 삶은 2010년 3월 양 씨를 만나면서 회오리 속으로 빠져 들었다. 양 씨는 자기가 전북지역 한 대학의 전산실에 일하고 있으며, IQ 148 이상의 탁월한 지능지수를 지닌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 멘사(MENSA)의 회원이라고 했다. 권 씨는 양 씨를 동경하게 됐고, 그의 말을 그대로 따르게 됐다.

양 씨는 권 씨가 세상 물정에 어둡고, 남의 말을 잘 믿는다는 것을 금세 알아챘다. 그리고 권 씨에게 "'시스템(기계교)'이라는 게 있다. 시스템이 지시하는 대로만 따르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권했다. 시스템(기계) 하나가 사람 1명을 맡아 관리하는데, 고도로 정밀화된 기계이기 때문에 지시만 따르면 취업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양 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권 씨는 3일 만에 시스템에 가입했다. 처음에는 양씨가 시스템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지만 이후에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지령이 내려왔다.

처음 내려온 지령은 대수롭지 않았다. '빨래를 하라', '청소를 하라', '집 앞에 피자를 사다 놓으라' 등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지령을 어긴 대가로 '벌금'이 내려왔고, 지령 그 자체도 '아이들을 잠재우지 말라', '소풍 보내지 말라', '함께 노숙을 하고, 밥 대신 수돗물만 먹여라' 등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변해갔다.

양 씨는 권 씨의 큰 딸이 지령을 무시하고 시험지 답안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내연남 조 모 씨(38)를 시켜 권 씨의 큰 딸을 회초리로 100대 때렸고 전주역 앞에서 노숙하라는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 등으로 수차례 매질을 하기도 했다. 지시를 따르지 않았을 때마다 벌금으로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사와야 하고 돈을 줘야 했다. 권 씨가 양 씨에게 준 돈만 1억4000만원이 넘고 이로 인해 6000여 만 원의 빚을 진 권 씨는 2년 만에 지령을 따르길 포기했다.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고 아이들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했다. 이 시스템에 줬다는 돈도 모두 양 씨가 받아 챙겼다.

권씨는 결국 3월 8일 부안 격포에 가 아이들에게 삼겹살을 사준 뒤 모텔에서 큰딸과 둘째를 살해했다. 권씨는 두 딸을 살해하고 달아났다가 이틀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검거 당시 그는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의 한 횟집 여자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권씨는 경찰에서 혐의를 시인하면서 "두 딸을 먼저 보내고 뒤따라가려고 했는데, 무서워서 죽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판 과정에서 시스템은 양 씨가 지어낸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간 권 씨가 시스템이 보낸 지령이라 믿었던 모든 메시지는 양 씨가 보낸 것이었다. 보낸 돈 역시 양 씨가 쇼핑 등으로 탕진해버린 상태였다. 양 씨가 주장한 '기계교'라는 종교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양 씨 역시 그런 종교를 믿은 적이 없었다.

양 씨가 이런 잔혹한 지령을 지어낸 이유는 단지 '질투심'이었다. 지령을 가장해 "큰딸이 시험에서 0점을 맞게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던 양 씨는 경찰 조사에서 "우리 아들보다 권 씨의 큰딸이 더 똑똑해 보였다. 권 씨를 골탕먹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양 씨는 권 씨에게 "욕조에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베게로 질식사 시키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보게 했다.

양 씨와 내연남 조 씨는 살인교사와 아동학대, 사기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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