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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반문농부(班門弄斧)

입력 | 2012-06-20 03:00:00

班: 나눌 반 門: 문 문
弄: 희롱할 농 斧: 도끼 부




자신보다 실력이 현저히 앞선 대가(大家) 앞에서 분수도 모르고 잘난 체를 한다는 뜻이다. 옛날 노반(魯班)이라는 사람은 도끼를 다루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그러니까 노반의 집 대문 앞에서 도끼를 가지고 장난치는 일은 우습고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은 ‘왕씨백중창화시서(王氏伯仲唱和詩序)’라는 글에서 이 말을 인용했다. “반 씨와 초 씨의 문에서 도끼를 다루니, 이는 두꺼운 얼굴일 뿐이다(操斧於班楚之門, 斯强顔而).”

이 구절보다 분명한 근거는 명나라 시인 매지환(梅之渙)에 의한 것이다. 매지환이 당나라 시인 이백이 만년에 유람하던 채석강(采石江)에 갔는데, 물 속에 있는 맑고 고운 달을 보고 뛰어들었다는 이백의 전설이 떠올랐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백의 묘와 적선루(謫仙樓) 등 적잖은 명승고적이 있었다. 이날 매지환은 이백의 묘비에 많은 시문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는 그도 일필휘지하여 ‘제이백묘(題李白墓)’라는 시 한 수를 썼다.

“채석강 가에 한 무더기 흙이 있는데/이백의 이름은 천고에 드높다/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시 한 수를 지으니/노반의 문 앞에서 큰 도끼를 휘두르는 것 같구나(采石江邊一堆土, 李白之名高千古, 來來往往一首詩, 魯班門前弄大斧).”

당대 백거이(白居易)도 ‘이백묘(李白墓)’란 시를 지었는데 이 시의 첫 구도 ‘채석강변이백분(采石江邊李白墳)’으로 시작된다. 매지환이 이 시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다. 물론 백거이 역시 이백의 무덤 앞에 시를 짓는 것이 반문농부의 심정이었을 것이고 매지환의 심정도 그러했으리라.

이백은 술 한 말에 시 삼백 편을 쓴다고 할 정도였으며 그런 시적 광기(狂氣)를 주로 절구로 승화해 찰나적 감정을 서정적인 필치로 주옥같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런 이백의 무덤 앞에 시를 남기고 있으니 매지환 스스로 반문농부라고 했다면 그의 호기(豪氣)를 죽은 이백이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