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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이 위험하다]선진국 사례서 배운다

입력 | 2012-06-20 03:00:00

美-英 공원, 울타리 낮고 조명 밝게 ‘방범형 설계’




‘조명이 없는 곳의 바닥은 인기척을 느낄 수 있게 자갈을 깔 것. 자전거 이용한 절도를 막기 위해 자전거 길과 인도를 분리할 것.’

선진국에선 공원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를 이처럼 세심하게 규정한다. 치안이 보장되지 않아 시민들이 이용을 꺼리면 공원의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진다는 판단에서다. 애써 세금을 들여 공원을 지어놓고 범죄 단속에 공권력을 추가 투입하는 사회적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의지도 강하다. 공원 수 늘리는 데만 집착해 범죄 예방에 관한 매뉴얼 자체가 없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 설계 단계부터 범죄 예방이 최우선

선진국에선 공원 설계 단계에서부터 범죄 예방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환경 설계를 통한 범죄 예방(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CPTED)’ 이론을 적극적으로 현장에 적용하고 있는 것.

미국 버지니아 주는 공원 주변의 시야가 닫히면 범죄행위를 감시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나무를 일정 간격 이상 띄워 심도록 하고 있다. 공원 내 비상전화를 세울 때는 눈에 잘 띄도록 주변에 대형 안내판이나 조명을 설치해야 한다. 공원 시설물의 위치를 잘 알 수 있게 이정표도 곳곳에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은 울타리의 형태, 가로등 간격, 도로 재질 등을 상세히 명시한다. 공원 놀이터의 울타리는 철망 등 투시 가능한 재료로 만들어야 하고 울타리 근처 나무는 밖에서 바라보는 성인의 시야를 가리지 않을 정도로 심어야 한다. 놀이터 등 어린이가 이용하는 시설은 관리사무소 가까이나 공원 입구와 같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만들어야 한다. 런던의 유명 공원 하이드파크는 이런 기준에 따라 공원 구역이 주거 및 상업 지역과 어우러지도록 설계돼 공원이 고립된 공간으로 남지 않도록 했다. 시민들이 공원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화장실 문이나 벽 등을 예술작품처럼 꾸미기도 한다. 단순히 깨끗하다는 정도의 인식을 넘어 이 정도까지 관리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공원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 사후조치도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캐나다 빅토리아 시의 밴필드 공원은 살인 사건이 빈발해 시민들이 불안해하자 주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크게 나 인기척을 느끼도록 바닥에 자갈을 깔았다. 또 자전거로 이동하며 보행자를 상대로 범행을 할 경우에 대비해 자전거와 인도를 분리하고 자전거 진입을 힘들게 하는 말뚝을 곳곳에 설치했다. 공원 내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걷게 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자전거 이용자의 인상착의를 인식하도록 한 대책이다. 영국 선덜랜드 주의 모버리 공원은 이 같은 기준을 벤치마킹해 보수공사를 한 뒤 한 달 50여 건에 이르던 범죄 발생 건수가 10건 정도로 줄었다.

박현호 용인대 경찰학과 교수는 “범죄예방 환경설계는 선진국에서 몇십 년 전부터 이론적 경험적으로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론”이라며 “선진국에서는 공원 안전을 위한 가설을 여러 가지 세운 뒤 이론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현장에 직접 적용해보고 실효성을 판단한다”고 말했다.

○ 공원의 주인은 시민

해외의 안전한 공원들을 보면 ‘많은 사람이 이용할수록 공원은 안전해진다’는 원칙을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하고 있다. 공원의 주인이 시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 탈선행위를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 주는 시민들이 자주 공원에 오도록 지역 문화행사를 집중적으로 유치한다. 또 상점이나 카페 설치 규정을 완화해 상인 등 일정 인원이 공원에 상주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 런던 다수의 공원은 벼룩시장 등의 행사를 정기적으로 열어 지역주민들 간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공원 안전 지침을 세세히 규정해 놓은 외국과 달리 우리는 관련 규정이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공원 내 위험행위를 우리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서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 정도로만 정의한 데 비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시의 자치 조례를 보면 음주 흡연 도박 노숙 등을 금지사항으로 명시했다. 또 공원 내 표지판에는 신고접수 주체와 전화번호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민 휴식처를 만든 본래의 선의가 왜곡되지 않도록 정부가 공원 치안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명시적 조항으로 체계화해야 한다”며 “건전한 휴식은 철저히 보호받지만 타인을 불안하게 하는 방종행위는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공원 이용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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