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한국의 국토 면적은 웬만한 중국의 한 성(省)이나 미국의 한 주(州)보다 좁다. 우리처럼 땅덩어리가 협소한 나라에서 행정부를 서울과 세종시로 갈라놓는 황당한 계획이 ‘어, 어’ 하는 사이에 정치논리에 의해 대못이 박혀버린 현실이 안타깝다. 세종시가 충청도가 아니라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에 만들어졌어도, 또 ‘노무현 구상’이 아니라 ‘이명박 구상’이었어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정부기관 옮기기와 조직 바꾸기
하지만 행정도시 신설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고 앞으로 부작용이 속출하더라도 이제는 되돌리기 어렵다.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 일정도 그렇지만 경제적으로도 없던 일로 하기는 너무 늦었다. 2030년까지 들어갈 세종시 조성비 22조5000억 원 중 지난달 말까지 이미 8조6000억 원이 투입됐다. 1조2000억 원이 소요되는 세종시 청사(廳舍) 건립도 속도를 더해간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국민이 간과한 돌발변수가 최근 공론화됐다. 여야 정치권이 차기 정부 조직 개편을 공언함에 따라 당초 계획대로 연내 부처 이전을 강행하면 부작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올해 옮겨갈 6개 중앙 행정기관 중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농림수산식품부는 조직 개편 개연성이 높다. 연말에 세종시로 옮겨간 공무원 중 상당수는 이삿짐을 풀기가 무섭게 다시 짐을 싸야 할 것 같다.
일반 가정에서도 집을 사거나 전세를 얻어 이사를 갈 때 자금, 직장, 자녀 교육 등 여러 변수를 감안해 적합한 시점을 택한다. 하물며 올해부터 2014년까지 16개 중앙 행정기관과 20개 정부 소속기관 공무원 1만여 명의 대이동이라면 후유증을 줄이면서 정교하고 예측가능하게 진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공무원 개인들도 불확실성에 따른 유무형의 피해가 심각할 것이다. 서울에 사는 공직자가 연말에 가족과 함께 세종시로 이사 가고 자녀 학교까지 옮겨놓는다고 가정해 보자. 내년에 차기 정부 출범 후 조직이 개편돼 서울로 돌아가거나 부산 등 다른 지역으로 다시 옮겨야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일부 부처 이전시기를 늦춘다고 행정기관 분산이 백지화되지 않는다. 어차피 총리실은 예정대로 9월에 세종시로 옮겨간다. 조직 개편과 비교적 무관한 환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도 연내에 이전하면 된다. 세종시에 들어간 나랏돈이 너무 많기 때문에 행정부 분산에 비판적인 사람이라도 ‘원상회복’을 주장하기는 무리다.
개편대상 부처 이전은 연기해야
시간이 촉박하다. 여야 정치권, 특히 대선주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하루빨리 밝히길 촉구한다. 현실적으로 정부조직 개편에 무게가 실린다면 여야와 정부가 합의해 재정부 국토부 농식품부를 옮기는 시점만이라도 내년으로 늦추는 것이 실용적 해법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릴 이유도 없다.
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