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 시인·명지대 교수
이진(二陣)과의 합류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는 아직도 ‘건축학개론’을 상영하고 있었다. 수다는 자연스럽게 영화로 넘어갔고 식당에 도착해서도 계속됐다. 겉절이를 집다 말고 40대 남자 후배는 가슴을 부여잡고 말했다. “너무 좋아요. 그 영화엔 사랑도 뭐도 없어요. 찌질하고 찌질했던 내 스무 살의 흔적들, 그 자체예요.” 그러자 50대 남자 선배가 씹던 삼합을 얼른 삼키고는 말했다. “‘클래식’ 봤어? 그걸 먼저 봐야 해!” 아쉽게도 두 편을 다 본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두 편 다 못 본 사람이었다!
‘새가슴’지녔기에 가뿐하게 훨훨
‘건축학개론’파는 얘기했다. 순댓국집 외아들 이제훈이 입은 셔츠가 GEUSS였어. 그 많던 NICE, PRO-SPORTS, ADIDOS들은 다 어디로 갔냐?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그때 그 시절의 삐삐, CD플레이어, 이어폰 같이 듣기, 무스와 올백. 그리고 정릉 자취방, 신촌·수색·능곡·일산의 기차역들, “첫사랑이 다 잘되면 그게 첫사랑이야? 끝사랑이지”라며 우리 곁을 지켜주었던 숱한 ‘납뜩이’들…. 쿨한 척하면서도 한없이 신파적이었던 망설임과 떨림에 파묻혀 버렸던 첫사랑의 고백, 그게 나라니까요! 영화를 보면서 내 첫사랑이 아니라 나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까가 궁금했어요, 이건 참한 여자 후배의 말이었다.
실패한 첫사랑을 영원한 사랑의 아이콘으로 만든 이는 단테였다. 아홉 살의 단테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덟 살의 베아트리체를 본 순간 자신의 ‘비애티튜드’(beatitude·더할 나위 없는 행복)임을 직감했다. 열여덟 살의 단테가 지나가는 열일곱 살의 베아트리체를 거리에서 스치듯 본 게 두 번째 만남이었다. 단 하나의 여자와 단 두 번의 스치듯 우연한 만남, 첫눈에 반했으나 소유할 수 없었던 첫사랑, 젊음의 절정에서 요절했기에 영원히 떠나버린 그 끝사랑을 단테는 ‘신곡(神曲)’ 안에 불멸의 사랑으로 담아냈다. 단테를 천국으로 인도한 전령사가 바로 그녀, 베아트리체였다.
네버엔딩의 첫사랑만으로도 우리는 내내 새들처럼 즐거웠다. 폭력, 자살, 등록금, 취업, 파업, 해고, 유로존 위기, 부채, 종북, 탈북, 애국가, 대통령 사저, 민간인 사찰, 대선 후보, 인육 따위는 한마디도 안 나왔다. 그날 우리는 이미 많이 지쳐 있었던가 보다.
난폭하고 무도한 현실 잊고싶어
새들이 가볍게 나는 이유는 머리가 ‘새대가리’고, 가슴이 ‘새가슴’이라서가 아닐까? 그래서 매번 새들은 텅 빈 허공을 ‘새획’을 그리며 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도 그날만은, 각자의 베아트리체가 우리 모두를 천국으로 인도해주기를 꿈꾸며 새처럼 날아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생의 ‘결정적 순간’들을 가슴속 뷰파인더로 담아내고, ‘클래식’한 것들에 충실한 ‘사랑학개론’을 다시 들으며, 잠시, 잠시만이라도, 이 난폭하고 무도한 현실들을 잊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6월의 크리스마스처럼!
정끝별 시인·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