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의 눈물… 밥 해먹이며 대학원 4곳 공부시켰는데 노숙인 위해 살겠다는 아들… “보지말자”子의 눈물… 아버지, 10년만에 진심 알고 “미안했다” 이젠 뇌중풍… 도와드릴 돈 없어 눈물만
19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1가 영등포 광장에서 만난 ‘털보 형님’ 박희돈 목사.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아버지….’
‘영등포역 털보형님’이라 불리는 박 목사는 11년째 노숙인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그의 인생은 2001년 12월 오전 3시 영등포역 앞에서 빨간 원피스 하나만 걸친 채 쓰레기통을 뒤져 남은 컵라면 국물을 허겁지겁 마시던 여자 노숙인을 만난 뒤 바뀌었다. 그 노숙인은 “저녁에 나오면 남자 노숙인이 끌고 가 성폭행을 하기 때문에 새벽에 몰래 나와 쓰레기통을 뒤진다”고 했다. 철학박사로 병원 목사 생활을 하던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내가 사회복지학 강의를 하는 교수였는데 세상은 학계에 보고도 된 적이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어요. 그때 결심했죠. 노숙인을 위해 살다 죽자고.”
가장 힘든 건 아버지(81)의 외면이었다. 경북 군위가 고향인 그는 중학교 때 대구로 유학을 오면서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손수 밥을 지어주던 아버지는 그가 대학원 4곳을 마칠 때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런 그가 ‘노숙인을 위해 살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다시는 집에 오지 말라”며 내쳤다.
아버지가 마음을 연 것은 지난해 말. 박 목사가 재개발 지역의 쓰러져가는 한옥에서 노숙인 10여 명과 엉켜 살며 매일 밥 500인분을 지어 먹이는 ‘한국의 진짜 목사’라는 소식이 세상에 알려진 뒤였다. 아버지는 “몰라줘서 미안했다”며 아들을 안고 울었다.
행복도 잠시, 4일 아버지가 심근경색과 뇌중풍으로 쓰러졌다. 그가 대구의 한 병원 중환자실을 찾았을 때 아버지는 겨우 의식을 되찾고 마비된 입으로 아들을 부르는 듯 “어버버버”했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게 만든 건 아버지가 아프다는 것보다 돈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쓰러진 뒤 2주간 청구된 병원비는 800여만 원. 병원에서는 “얼른 돈을 내고 요양원으로 옮겨 달라”며 퇴원을 압박하고 있다. 노숙인에게 모든 걸 퍼주고 산 터라 그는 가진 돈이 없다.
박 목사는 무거운 마음을 숨긴 채 이번 주말 대구 Y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다시 보러 갈 예정이다. 후원 계좌는 우리은행 891-04-100397(예금주 한국기독교복지협회).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