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도심의 스펙타클르 광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 매년 여름 열흘 동안 열리는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이걸 포함해 350개에 달하는 모든 야외공연과 이벤트가 무료이다. 장프랑수아 르블랑 촬영, 투어리즘 몬트리올 제공
《몬트리올. 1976년 여름올림픽을 개최한 캐나다 대도시(퀘벡 주)다. 대한민국이 딴 첫 금메달(양정모·레슬링), 열네 살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3관왕)의 일곱 차례 만점 행진, 복싱스타(슈거레이 레너드, 레온 스핑크스) 탄생, 아마추어선수만 참가한 마지막 올림픽. 모두 ‘메이드 인 몬트리올’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건 이게 전부다. 캐나다산 와인의 절반을 소비하는, 파리 밖에서 가장 파리를 닮은 유럽풍 도시, 캐나다 재산의 80%를 소유한 거부들이 몰려 살고 하루도 빠짐없이 축제가 열리는 페스티벌 시티라는 사실은 잘 모른다. IMAX와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의 고향이고 ‘언더그라운드 시티’가 있으며 북미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언어의 섬’이란 것도 같다.
음악애호가에게 몬트리올은 세계최고 재즈페스티벌의 무대다. 500개의 크고 작은 콘서트와 이벤트가 열리는 이 음악축제가 28일부터 7월 7일까지 열흘간 열린다. 북미로 휴가여행을 떠나려는 이에게 가장 추천하고픈 도시, 몬트리올을 둘러본다.》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
이달 7일. 몬트리올 다운타운은 떠들썩했다. 뤼(rue·프랑스어로 ‘거리’를 뜻하는 단어) 필의 카페거리에선 8일부터 사흘간 열릴 포뮬러원(F1)그랑프리(자동차경주)를 홍보하는 거리전시로, 뤼 생카트린에선 ‘프랑코 폴리’(Franco Follies·프랑스어로 노래하는 음악인의 축제) 야외공연에 운집한 사람들로. 연중 축제가 끊이지 않는다는 ‘페스티벌 시티’ 몬트리올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며칠 후면 몬트리올은 음악으로 가득 찬 음악도시로 변한다.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 덕분이다. 주 무대는 프랑코 폴리의 야외공연이 펼쳐진 ‘스펙타클르’ 광장. 축제 내내 거리퍼포먼스와 딕시랜드 재즈퍼레이드 등 온갖 볼거리가 여기서 펼쳐진다. 그리고 해가 지면 거대한 야외공연장으로 변해 매일 다른 밴드와 연주자가 나와 음악을 들려줄 터이다. 그런데 그게 모두 무료다. ‘야외공연=무료’는 이 도시의 철학이자 원칙이다.
올해는 그 33번째다. 올해도 150개의 유료공연과 350개의 무료공연이 열흘간 몬트리올 다운타운에서 쉼 없이 펼쳐진다. 퍼포먼스까지 포함하면 이벤트는 무려 1000개. 여기에 초대된 뮤지션과 엔터테이너도 30개국의 3000명이나 된다. 공연장은 실내 14개, 야외 8개. 예상관람객은 관광객(2만5000명)을 포함해 200만 명 정도. 올해 초대된 뮤지션 중에 눈에 띄는 이는 ‘트럼펫의 전설’로 불리는 마일즈 데이비스다. 그는 ‘마일즈 스마일즈’라는 그룹(6인)으로 참가한다. 거기엔 비틀스와 쌍벽을 이룬 영국 록그룹 롤링스톤스의 베이스주자 대릴 존스도 있다.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에서 연주되는 건 재즈 외에도 다양하다. 집시부터 아프리카 음악까지도 등장한다. 재즈 외 분야에선 라이자 미넬리와 제임스 테일러, 노라 존스가 초대됐다. 라이자 미넬리는 오스카상 골든글로브상(2회)과 더불어 토니상 에미상까지 수상한 전천후 예능인이다. 제임스 테일러는 1970년대 포크뮤직의 아이콘. 노라 존스는 앨범 4000만 장 판매기록의 싱어&송 라이터다. 올 축제기간에는 전 세계의 희귀 기타를 망라한 ‘몬트리올 기타 쇼’(6월 29, 30일과 7월 1일)도 함께 마련된다.
에펠탑만 없는 파리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부근 어디쯤으로 보이는 이곳. 몬트리올의 구시가에 있는 자크 카르티에 광장이다. 파리 바깥에서 가장 파리다운 도시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모습이다. 스테판 풀랭 촬영, 투어리즘 몬트리올 제공
이런 몬트리올이다 보니 레스토랑 역시 프랑스풍 일색이다. 메뉴도 대부분 프랑스어로 씌어 있다. 캐나다에서 보기 힘든 야외카페도 흔하다. 외관 분위기 모두 파리와 진배없다. 바게트(프랑스인이 주로 아침에 먹는 길쭉한 식빵)도 같다. 몬트리올의 명물빵집 ‘프리미에르 무아송’에선 토요일 아침에 8000개나 팔려나간다. 집을 소유하지 않고 임대하는 것도 파리 식이다. 주민의 75%가 임대주택에서 사는데 이건 1642년 개척초기부터 유래한 오랜 전통. 당시 식민지개척 회사가 수확 곡식의 절반만 내면 개척민에게 집을 빌려주던 게 시초다. 자동차경주대회도 그렇다. 북미가 나스카(NASCARR)에 열광하는 데 비해 몬트리올 주민은 ‘포뮬러원’(F1)그랑프리를 즐긴다. 포뮬러원 트랙은 평소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 트랙으로 개방된다.
북미 최초 성당 ‘노트르담 바실리카’
▲왼쪽=성 앙드레 수사의 치유기적 현장인 마운트로열 성요셉 예배당. 2년전 베네딕트토16세 교황이 성자로 시성했다. 미셸 카티 촬영, 투어리즘 몬트리올 제공▲오른쪽=몬트리올 구시가에 있는 북미대륙 최초의 성당 노트르담 바실리카의 실내. 소리의 울림이 좋아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생전에 특별히 노래부르기를 좋아했던 곳이다. 스테판 풀랭 촬영, 투어리즘 몬트리올 제공
17∼18세기 영국과 프랑스는 신대륙에서도 각축했다. 그런데 대륙공략 방식은 각자의 기질만큼 서로 달랐다. 섬나라 영국은 동부해안을 남북으로 개척했다. 이에 반해 대륙의 프랑스는 강의 수운을 이용해 내륙 장악에 나섰다. 그 결과 대륙 중심의 오대호로 연결되는 세인트로렌스 강을 확보했다. 프랑스의 식민부락도 당연히 강안에 조성됐다. 퀘벡시티와 몬트리올이다. 강 하구의 퀘벡시티는 수로 초입의 요새다. 북미대륙에 유일한 퀘벡 성곽은 그렇게 건축됐다. 몬트리올은 여기서 250km 상류. 이곳은 원주민과 모피교역 창구로 개발됐다.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는 ‘뉴 프랑스’로 발전했고 이곳은 신대륙 식민지 경영의 전진기지가 됐다.
연간 200만 명이 찾는 ‘마운트로열 성 요셉 예배당’도 빼놓을 수 없다. 캐나다 최대규모의 돔 지붕 건물은 성당도 아닌 예배당(Oratory)이지만 현재는 바실리카(교황 집전 미사가 열리는 대형성당)로 승격했다. 이걸 짓고 평생을 환우를 위해 기도한 앙드레 베세트 수도사(1845∼1937) 덕분이다. 그는 2년 전 베니딕토16세 교황으로부터 시성(諡聖·성자가 되는 것)됐다. 수많은 환자를 낫게 한 치유 은사의 기적을 높이 사서인데 그는 환자들에게 예배당램프의 기름을 발라주며 회복을 기도했다. 그 기적은 요한 바오로2세 전 교황에 의해 인정됐다. 환자들이 버리고 간 수없이 많은 지팡이와 목발―건물 한 벽면 통 유리창 공간에 전시―이 그걸 보여준다.
몬트리올=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