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시도 때도 없는 게임과 채팅
아들의 휴대전화와 관련한 고민을 주변에 토로했더니 다양한 하소연이 쏟아졌다. 대학교수인 아버지가 모바일게임에 빠진 아들의 스마트폰을 부숴버렸더니 중학생 아들은 이틀간 학교를 결석했다. 스마트폰을 다시 사주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아버지는 아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여고생 딸이 카카오톡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토로하는 사람도 있었다. “카카오톡 대화가 게임보다야 유해하겠느냐”며 위로하자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들이 주고받는 문자가 하루 500∼600건, 많으면 1000건이라고 했다. 문자는 수업 중에도 날아오고 자정에도 날아온다. 즉답을 안 하면 문자를 씹는다며 따돌림이 시작된다. 죽기 전엔 끊을 수 없는 천형(天刑)이라는 말은 과장이겠지만 딸의 스마트폰을 뺏을 수도, 방관할 수도 없어 고민이라고 했다.
지난해 청소년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전년도보다 6배 이상 증가한 36.2%.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다. 행정안전부의 설문조사 결과 청소년 이용자의 40.5%가 스마트폰을 과다사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청소년의 스마트폰 소지가 가져오는 폐해는 학업부진 게임중독 등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스마트폰 불안증’인 것 같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현상이다. 최근 수업 도중 스마트폰 사용을 제지하는 교사의 손가락을 학생이 드라이버로 찌른 사례까지 있었다. 그 학생이 제정신으로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은 퇴화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지, 왜 기기 탓을 하느냐는 반론이 나오겠지만 기기는 사용하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있다. IT 미래학자인 니컬러스 카는 인터넷이 생각을 넘어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다각도로 입증했다. 그는 2008년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라는 글에서 “인터넷이 우리의 지식과 문화를 즉흥적이고 주관적으로 만들어 깊이 없는 지식을 양산해 낸다”고 지적했다. 작금의 스마트폰 중독사태를 보면 검색엔진 구글의 폐해는 귀여운 수준이다.
스마트폰은 인간사회를 통제하는 거대한 리바이어던이 되고 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가족의 전화번호도, 친구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고, 알람이 울리지 않아 지각하는 황당한 경우를 말이다. 스마트폰이 똑똑하게 진화할수록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퇴화하고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폴 발레리의 명언이 소름끼치게 맞아떨어지는 스마트폰 세상이 가끔 무서워진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