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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빅 브러더보다 무서운 ‘빅 마누라’

입력 | 2012-06-23 03:00:00


“그 렌즈, 못 보던 건데? 새로 샀지?”

카메라를 만지던 남자는 아내의 기습에 간이 떨어질 뻔했다. “아냐. 있던 거잖아.” 태연을 가장했지만 소용없었다.

‘우겨보기’가 통하지 않자, 다음에는 ‘공돈 챙겨주기’ 수법을 써보았다. 구입한 렌즈를 보여주며 아내에게 돈을 내밀었다. “바꿔 온 거야. 차액 10만 원 받은 건 줄게.”

남들은 효과를 봤다고 했다. 아내들이 공돈에 정신이 팔려 본질을 잊었다는 것. 그런데 남자의 아내는 달랐다. “쇼하고 있네. 거짓말 벌금 30만 원.”

벌금을 내느라 연말정산과 현금수당 등을 모아놓은 비밀계좌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이런 정도일 줄은 몰랐다. 사귈 때의 그녀는 사진 취미를 지지해주던 ‘전속 모델’이었다. 그런데 결혼 후에는 ‘가장 강력한 반대자’로 돌변했다.

동호회의 누군가는 “취미에 남편을 빼앗겼다는 분노 때문”으로 풀이했다. 여자들 처지에선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취미에 블로킹을 당하니까 좋아할 수가 없다는 것.

며칠 후 남자는 기다려온 렌즈 매물을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판매자와 연락을 하려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놀라서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했다. “일찍 끝나지? 저녁 먹고 들어가자.” 아내가 어딘가에서 폐쇄회로(CC)TV로 감시하는 듯한 느낌.

남자는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정공법’으로 밀어붙여 보았다.

“귀한 렌즈가 중고장터에 좋은 값에 떴더라. 내가 예약했지.”

남자는 어른이 된 후에도 장난감을 원하는 존재다. 놀이가 1순위다. 일에 매달리느라 잃어버렸던 재미와 보람을 놀이를 통해 되찾는다. 사랑 또는 소통이 1순위인 여자들과는 다른 것이다.

“왜 자꾸 사대느냐”는 아내의 힐난에 남자가 대꾸를 했다. “그럼 여자들은 왜 자꾸 옷을 사대는 거냐? 다 그게 그건데. 가방이나 화장품도….”

다음 날 인터넷 사진 동호회에 접속하려는데 자꾸만 에러 메시지가 나왔다.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남자는 몇 군데를 돌아본 결과, 그가 가입한 사진 관련 웹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밤사이에 모조리 바뀌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침 식탁에 마주앉았던 아내의 득의만만한 표정이 떠오른 것은 그 순간이었다.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는 남편의 대화를 엿듣거나 일기장을 훔쳐봤다고 하던데, 21세기의 아내들은 남편을 감시하기 위해 그토록 고생할 필요가 없어졌다.

컴퓨터만 있으면 편안하게 앉아서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남자들은 이제, 조지 오웰의 빅 브러더보다 ‘빅 마누라’를 걱정해야 할 때가 됐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