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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춘 그 동네’서 112 신고 또 묵살당해

입력 | 2012-06-23 03:00:00

수원중부署, 폭행피해여성이 주소 밝혔는데 다시 전화
“별일없다”는 가해자 말에 출동포기… 오인신고 종결
동거남 “오원춘처럼 해주겠다” 중상입혀 5일간 감금




112 신고를 받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20대 여성 피살사건을 막지 못한 경기 수원중부경찰서가 이번에는 폭행사건 신고를 받고 출동하다 가해자 말만 믿고 되돌아와 물의를 빚고 있다. 경찰은 신고 상황을 재확인하기 위해 건 전화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받았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거짓말만 믿고 출동 도중 복귀했다. 경찰은 20대 여성 피살사건 이후 112 신고 대응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미숙한 대응이 되풀이되고 있다.

22일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A 씨(31·여)는 17일 0시 34분경 수원시 팔달구 지동 자신의 집에서 112에 전화를 걸어 “아침부터 맞았는데요, 빨리 좀 와주세요”라며 폭행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22초간 이어진 통화에서 A 씨는 “(수원시 팔달구) 지동 OOO-O(지번), OOO호(집 호수)”라고 정확한 주소를 말했다. 피해자 집은 20대 여성 피살사건이 발생한 장소에서 불과 7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신고를 접수한 경기경찰청 112종합상황실은 수원중부경찰서에 출동을 지시했다.

수원중부서는 관할인 동부파출소 순찰차 2대가 다른 사건을 처리 중인 것을 확인하고 인접한 행궁파출소 순찰차에 출동 지령을 내렸다. 곧바로 피해자 집에서 약 1.5km 떨어진 화성행궁 광장 근처에 있던 순찰차가 출동했다. 약 6분 뒤인 0시 40분경 현장 근처에 다다른 경찰은 구체적인 상황과 위치를 재확인한다는 이유로 피해자 집에 전화를 걸었다. 이미 피해자가 112 신고 때 정확한 집 호수까지 알려줬는데도 불필요한 전화를 한 것이다.

경찰의 전화는 가해 남성 B 씨(34·무직)가 받았다. 그는 “신고한 사실이 없다”고 태연히 거짓말을 했다. 경찰이 폭행 가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폭행사건이 일어났느냐?”고 묻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경찰은 B 씨의 말만 믿고 오인 신고로 판단해 집에 가지도 않은 채 순찰차를 돌렸다.

B 씨는 A 씨가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고 “오원춘에게 희생당한 여자처럼 해 주겠다”며 A 씨를 주먹과 발로 마구 폭행했다. A 씨는 갈비뼈 2대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A 씨는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든 고통 속에서도 B 씨의 폭행이 두려워 5일간 집 밖에 나가지 못했다. 21일 오후 1시 15분 뒤늦게 A 씨와 연락이 닿은 가족이 집에 찾아왔고 다시 경찰에 전화를 걸어 “112에 신고했는데 경찰이 출동하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경찰은 다친 A 씨를 병원으로 옮기는 한편 B 씨를 상해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두 사람은 각각 이혼 경력이 있으며 지난해 말 만나 A 씨 집에서 동거 중이었다.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A 씨는 자세한 진술을 거부하면서 B 씨에 대한 처벌도 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A 씨 가족들은 “자칫 큰 위험에 빠질 뻔했다”며 B 씨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경찰은 B 씨를 상대로 상습 폭행 여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또 B 씨의 말만 믿고 오인 신고로 판단한 경찰관에 대해 감찰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기경찰청 관계자는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전화를 받으면 즉각적으로 상황을 알아챘어야 했는데 명백한 경찰의 실수였다”며 “지령 과정과 현장 대응에 문제가 확인되면 엄중히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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