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자들/주원규 지음/216쪽·1만1000원·작가정신◇아흔아홉/김도연 지음/200쪽·1만1000원·작가정신
주원규의 소설 ‘광신자들’은 한순간에 테러범이 된 10대들의 일탈을 유머러 스하게 그렸다. 작가정신 제공
‘소설향’을 선보였던 작가정신이 새 경장편 시리즈 ‘소설락(樂)’을 내놓았다. 주원규의 ‘광신자들’과 김도연의 ‘아흔아홉’으로 출발을 알렸다. ‘독자에게는 소설 읽는 즐거움을, 문단에는 신선한 재미를 준다’는 캐치프레이즈. 소설책이 점차 얇아지는 추세에 로맨스, 추리 등 ‘락’에 충실한 작품들이 인기를 얻는 시장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이 때문에 15년 전 문단의 틈새를 찾았던 ‘소설향’에 비해 기획의 신선함은 덜하다.
주원규의 ‘광신자들’은 웃음에 충실하다. 올 초 장편 ‘반인간선언’에서 공동체와 선(善)의 타락을 묵직하게 고발했던 작가는 이번에는 작심하고 웃기기로 결심한 듯하다. ‘기’, ‘농’, ‘도’란 이름을 가진 고교 중퇴생 3명이 주인공. 지지리도 못생기고 뚱뚱해 여자로서의 성적 매력을 전혀 찾아보기 힘든 ‘농’은 사제 총이나 폭탄을 만드는 숨은 기술자다. 그는 사이비 종교단체의 지시에 따라 고성능 폭탄을 만들어 국회를 폭파시키려 한다. 농은 “300만 원을 주겠다”며 ‘기’를 꾀어 폭탄 운반을 맡기지만 기의 실수로 폭탄은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폭발한다. 이 엉뚱한 10대들은 단숨에 1급 테러리스트로 언론에 소개된다.
김도연의 ‘아흔아홉’은 강원도 대관령 골짜기에 사는 대학 강사 ‘나’와 아내, 그리고 숨겨둔 애인인 Y의 얘기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메모 한 장 남기지 않고 사라진 뒤 나는 아내와 Y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방황한다.
김도연의 소설 ‘아흔아홉’은 대관령 아흔아홉 고개를 배경으로 사랑과 이해, 용서를 얘기한다. 작가정신 제공
짙은 연무 속 촉촉한 시선을 유지하던 작품은 말미에 안개가 걷힌 듯 투명하고 밝게 변한다. 아내가 제안한 소풍에 Y가 응하며, 나와 함께 3명이 대관령을 오른다. 아내와 Y는 갑자기 언니 동생 사이가 되고, 아내는 “남편과의 잠자리가 어땠냐”고 농담까지 한다. 상대의 존재를 완전히 이해, 용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왜, 어떻게 화해하게 됐느냐에 대해서는 별반 설명이 없다. 결말이 생뚱맞게 느껴지는 이유다.
경장편은 보통 단편 속 기교의 맛, 그리고 장편 속 서사의 묵직함을 함께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이번 경장편들은 새로운 시도, 기교에는 충실하지만 촘촘하게 짜여야 하는 서사적 매력은 헐겁다. 소설락 시리즈는 앞으로 격월로 새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