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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일제 판검사와 싸운 조선 변호사… “그 자체가 독립운동”

입력 | 2012-06-23 03:00:00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하다/한인섭 지음
688쪽·2만7000원·경인문화사




조선공산당 사건을 맡은 변호사 28명 중 7명은 종로경찰서 경찰들의 고문 사실을 조사해 1927년 10월 16일 경성지방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 7명의 변호사 중 앞줄 왼쪽부터 일본인 변호사 후루야 사다오와 한국인 변호사 김태영, 김병로. 뒷줄 왼쪽부터 이인, 허헌. 경인문화사 제공

1927년 10월 16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고소장이 도착했다. 종로경찰서 고등계의 경찰들을 폭행, 능학(凌虐·학대), 독직(瀆職)죄로 고소한다는 내용이었다. 고소인은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된 권오설, 강달영 등 다섯 명으로 “취조 중 모진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병로(1887∼1964), 이인(1896∼1979), 허헌(1885∼1951)을 비롯한 변호사 7명이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 변호사들은 피고인들을 면회하고 조사해 고문 사실을 확인했고 증거와 증언도 확보했다.

고소장 제출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엄청났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공판 과정에서 일본인 경찰의 고문 실상이 드러났지만 검찰은 “해당 경찰들이 고문한 사실이 없다”며 불기소 처분했고, 변호인단은 항고했으나 기각됐다. 이 소송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까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변호인단의 활약에 사회적 성원이 이어졌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법정에서 일본법에 근거해 일본인 판검사를 대상으로 조선인 독립운동가를 변론해온 조선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항일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 김병로, 이인, 허헌의 활약상이 펼쳐진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일본법을 근거로 한 항일변론이 양립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5년 넘게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판 기록과 관련 기사를 샅샅이 뒤진 후 “독립운동과 항일변론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항일 변호사들은 요식절차에 불과한 형사재판을 치열한 독립운동의 장으로 변모시켰다”고 결론 내렸다.

이들은 일제의 법정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다. 형사 절차의 맹점을 매섭게 지적하고 현지 조사를 통해 총독부를 고발하기도 했다. 또 독립운동가들이 법을 몰라 과도한 처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했다. 이는 변호사 이인의 회고에서 잘 드러난다. “만해(한용운)가 ‘원 세상에 육법전서를 읽어가며 독립운동하는 꼴은 처음 보았네’ 한다. 동지들이 모두 경기도경찰부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인데, 허헌은 육법전서를 차입시켜 열심히 읽더라는 것이다. 그러더니 동지들에게 ‘아무리 봐도 우리가 한 일은 위경죄(지금의 경범)밖에 안 되네. 그러니 고작 구류 아니면 과료에 해당할 뿐이오’ 했다는 것이다.”

세 변호사는 수임료를 대부분 피고인 돕기와 사회운동 자금으로 내놓았다. 무료로 변론을 맡는 경우도 많았다. 일제에 의해 변호사 자격을 정지 박탈당하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일제가 패망하기까지 변절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들의 항일재판투쟁과 법률운동은 그 자체가 독립운동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기 충분하다”며 “이 책을 통해 양심적인 법률가들이 어떻게 시대적 과제에 부응했는지 체감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