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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안철수의 ‘밀당’

입력 | 2012-06-25 03:00:00


김순덕 논설위원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국방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의 리더십은 시기상조”라고 했을 때 나는 개그콘서트인 줄 알았다. 국방의 엄중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그냥 정치인으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불쾌지수 높은 여름날, 정치로 개그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래서 ‘납량특집 정치’를 궁리해봤다.

정치는 연애다… 국민의 마음잡기

‘선거란 선수끼리 국민 속이는 일’이라던 대통령이 있었다. 유권자 마음을 사로잡아 투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정치는 구애(求愛)라고 할 수 있다. 성(性)심리학적으로 정치와 정치인을 분석한 학자들도 외국엔 적지 않다.

우리나라 정당이 남자라면 어떤 이미지일까. 신랑감처럼 놓고 봐선 소용없다. 사랑에 눈멀면 근본이나 조건은 별 상관없어서다. 남 주기 아까운 내 딸의 결혼 후보자로 봐야 깐깐한 검증이 가능해진다.

새누리당은 양지쪽만 디디며 잇속을 챙겨온 뺀질이 같다. 욕은 먹겠지만 능력 있고 웰빙 체질이어서 내 딸 고생은 안 시킬 듯하다. 민주통합당은 정의롭고 남자다운데 불만과 콤플렉스가 많다. 새누리당처럼 얄밉진 않지만 하루는 과격했다가 다음 날엔 또 다른 모습이니 고생도 사서 할 것 같다. 통합진보당은 눈빛은 형형한데 불온해 보인다. 잘되면 충신이나 잘못돼 역적되면 어쩌나 싶다.

이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등장한다. 착하고 반듯해 됐다 싶던 차에, 혈혈단신인 줄 알았던 그가 ‘밀당’을 들이댄다. 밀당이 ‘비밀의 당’이라면 안철수의 속이 어떤지 알 수 있으니 차라리 낫다. 하지만 요새 밀당이란 젊은 연인들의 필수과목인 ‘밀고 당기기’를 뜻한다. 게다가 겉보기와 달리 안철수는 밀당의 귀재지 뭔가.

애정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밀당의 정석 1조는 진의 교란이다. 마음을 다 주지 않고 말과 행동은 애매하다. 결혼을 하겠다는 건지, 문제가 있다는 건지 애타게 만든다. 정치인 중에선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능했다고 ‘유혹의 기술’을 쓴 마이클 그린은 지적했다. 결단력이 진짜로 없었던 루이 16세도 여기 속한다.

2조는 타이밍 교란이다. 돌연 연락을 끊고 전화도 안 받다가, 잊을 만하면 나타나선 달래고 공감해준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선동적 연설로 대중의 감정을 자극한 뒤 한동안 홀연히 사라지곤 하는 밀당으로 중국의 우상이 됐다.

밀당의 필살기인 3조는 환상 교란이다. 현실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자극하고 자기를 백마 탄 왕자(또는 선구자)로 연출해서는, “이 사람이라면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통치는 능력…살아봐야 안다

피 말리는 밀당에서 지지 않으려면 ‘너 없어도 난 잘 산다’고 정신무장을 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 안철수가 대통령 선거에 안 나오는 일은 없다는 점을 바닥에 깔고 있으면 괜히 안달할 일도 없어진다. 안랩의 주식 때문이다. 불출마 선언을 하는 순간 주가가 폭락할 것이 뻔한데, 돈 욕심 아니라 사회적 책임에서라도 그런 말은 못한다고 나는 믿는다.

출마 선언이 늦을수록 검증 시간은 줄게 돼 있다. 그러나 내재적 관점에서 보면, 야당 후보도 안 정해진 판에 링에 먼저 올라가 매를 맞을 이유가 없다. 국민의 인내심이 바닥나면 분노로 돌변할지 모르는데 자신감인지, 결단성 부족인지 혼돈스럽다.

야당 후보가 확정되고도 당선 가능성이 압도적이지 않을 경우 단일화 압력은 커질 것이 분명하다. 안철수도 “반드시 내 힘으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권력의지에 불타지 않는다면 단일화든, 공동정부든 연대는 불가피하다.

단일화 게임에서 누가 승리하는지에 따라 나라의 명운이 달라진다고 나는 보지 않는다. ‘얼굴마담’만 달라질 뿐, 몸통과 손발은 거기서 거기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단일화로 그의 당선을 만들었다고 확신할 야당 사람들이 뒤로 돌아 집에 갈 리 없다. 안철수의 대선 공약을 굳이 검증하지 않아도 민주당과 큰 차이 없을 것 같은 느낌도 그래서 든다.

문제는 밀당에 능했다고 결혼 후 좋은 배우자가 될 능력을 갖췄느냐다. 안타깝지만 이건 살아봐야만 안다. 최고의 연인이 최악의 남편으로 드러나듯, 정치엔 유능해서 당선됐더라도 통치능력은 다를 수 있다.

영국의 하원의장 로빈 쿡과 이혼한 뒤 ‘권력과 성, 정부의 본질’이라는 책을 쓴 마거릿 쿡은 지칠 줄 모르는 리비도가 곧 정치인의 성취욕이라며 드골과 마오쩌둥, 케네디의 바람기를 지적했다. 케네디가 능력을 다 드러내기 전에 암살되는 바람에 지금껏 카리스마적 리더로 간주되는 게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루이 16세는 성적 무능 탓에 용기도, 결단력도 박살나 결과적으로 프랑스혁명을 불렀다. 프로이트의 리비도론을 깊이 이해했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얘기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