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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무슬림 형제단

입력 | 2012-06-26 03:00:00


이슬람 원리주의를 정초한 이론가인 사이이드 꾸틉이 1966년 이집트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죄명(罪名)이었다. 나세르로 대표되는 아랍 민족주의와 꾸틉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급진주의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꾸틉의 뒤를 이어 파키스탄에서는 마울라나 마우두디, 이란에서는 루홀라 호메이니가 등장했다. 이 세 사람이 이슬람의 종교적 비전을 대중 정치운동의 기반으로 만든 주역이다.

▷꾸틉은 1950년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했다. 1952년 나세르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종식시켰을 때 무슬림형제단은 이를 ‘이집트 민중의 아들들에 의한 정권 장악’으로 환영했다. 꾸틉 그 자신 나세르의 혁명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러나 나세르는 곧 무슬림형제단의 대중적 인기가 자신의 집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고 1954년 무슬림형제단의 활동을 금지했다. 두 집단의 기나긴 대립이 시작됐다. 이집트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1928년 창립된 무슬림형제단의 이념은 낡은 것으로 드러났다. 무슬림형제단은 새로운 정치상황에 부응할 이념을 만들어내야 했다. 꾸틉이 그 중심인물이었다.

▷지난해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나세르 이래 계속된 군사정권이 무너진 이후 처음 실시된 이집트 대통령선거에서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66년 꾸틉의 처형, 즉 아랍민족주의에 당한 이슬람 급진주의의 패배를 뒤집는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지난해 반정부 시위가 진행 중일 때에는 정치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올해 3월 총선에 참여해 다수당이 됐다. 총선 직후에는 대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다시 이를 뒤집고 대선에서 후보를 내놓아 승리했다.

▷이집트 군부의 거부가 만만치 않다. 군부는 지난주 무슬림형제단과 급진 이슬람세력인 살라피가 60% 이상을 장악한 의회를 해산하고 대통령의 군 통수권 등을 박탈하는 임시헌법을 발효시켰다. 앞으로 무르시 대통령과 군부의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르시 대통령이 정치 경제 사회에 시대착오적인 종교적 제약을 가할 수도 있고, 군부가 철권으로 민주적 절차를 방해할 수도 있다. 양극단을 제어할 열쇠는 이집트 국민이 쥐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