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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사르 습지’ 공식 지정된 한강 밤섬, 축복일까 재앙일까

입력 | 2012-06-27 03:00:00


 

보기 드문 도심 속 철새도래지로 잘 알려진 한강 밤섬이 최근 ‘람사르 습지’로 공식 지정되면서 서울의 이미지 제고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홍수에 취약한 한강의 관리에 문제가 생겨 자칫 1000만 서울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습지 보호해야” vs “홍수피해 우려”


 

환경부와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람사르 사무국은 밤섬이 람사르 습지로 공식 지정됐다는 공문을 21일 환경부에 발송했다. 람사르 습지는 멸종위기종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로 보전 가치가 있거나 희귀하고 독특한 유형의 습지를 대상으로 람사르 사무국이 지정한다. 현재 전 세계 160개국의 1970곳이 지정돼 있고 국내에서는 강원 인제군 대암산용늪, 경남 창녕군 우포늪 등 17곳이 이름을 올렸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과 마포구 당인동 일원에 떠 있는 밤섬은 이례적으로 도심 한복판에 자연 상태로 보전된 하중도(河中島)다. 과거 한강 개발에 필요한 골재 채취를 위해 폭파됐다가 토사가 쌓이면서 자연적으로 복원된 습지다. 매, 새홀리기, 말똥가리 등 법정보호종 7종과 원앙, 황조롱이, 솔부엉이 등 천연기념물 3종이 서식해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이 환경부의 입장이다. 밤섬이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면서 환경부는 습지보호지역에 준하여 관리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토부와 하천학계에서는 하천관리와 생태·환경적 측면에서 문제점이 많다고 우려하고 있다. 밤섬은 팔당댐에서 물을 내보내거나 비가 많이 왔을 때 수위와 수량의 증감이 매우 크다. 특히 최근 25년간 면적이 50% 이상 증가하는 등 퇴적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밤섬 인근 제방의 높이는 안전 기준보다 최대 1m 정도 낮다. 반면 건너편 여의도 홍수터에 각종 시설물이 들어서고, 인공적으로 심은 수목이 무성해지는 것도 밤섬의 홍수 취약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문제는 밤섬이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면 하천관리가 현재보다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람사르 협약에 따라 해당 국가는 람사르 습지에 대한 보전 의무가 생긴다.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거나 이에 준해서 관리하면, 모든 개발행위가 불가능하고 수량에 영향을 주는 행위도 제한된다.

밤섬은 말똥가리(멸종위기 2급·위), 흰목물떼새(멸종위기 2급·가운데), 원앙(천연기념물) 등 법정보호종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로 보전 가치가 높다. 환경부 제공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안홍규 박사(생태공학)는 “우리나라 하천은 외국과 달리 연 강수량의 3분의 2가 여름에 집중되고 유량의 변동이 커 홍수 발생 가능성이 높다”며 “한강 중 서울시에 속한 구간도 매년 15만 m³를 준설하고 있는데 비전문가인 환경부에 의해 하천관리가 제약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밤섬이 람사르 습지가 된다고 국내 습지보호지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며 “국토부의 우려와 달리 하천관리가 안 될 이유가 없으며 홍수 시 각종 대책 등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과거 환경부가 하천을 습지보호구역에 포함시키는 법률 개정을 추진한 적이 있어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 하천 곳곳에서 보전-치수 갈등

습지 보호를 둘러싼 환경부와 국토부의 갈등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인 장항습지가 대표적이다. 장항습지는 1985년과 비교해 6배 정도로 크게 확장되었고, 지속적인 퇴적으로 점차 육지화(늪지가 뭍으로 바뀌는 것)가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홍수 시 제방이 침식되고 범람의 위험도 높아 국토부는 습지 지정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는 하천 습지의 육지화를 막고 홍수 예방을 위해 수림의 벌채, 습지 준설 등 적극적인 방법으로 습지를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진강 하구에서도 습지보호구역 지정 추진을 놓고 환경부와 국토부·경기 파주시가 갈등을 빚고 있다. 환경부는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방침이지만 국토부와 파주시는 한강에 합류되는 지역이라 이곳에서 물이 잘 안 빠지면 막대한 홍수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안 박사는 “밤섬의 람사르 습지 등록 과정에서 밤섬의 특성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관계기관, 전문가 등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