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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미야의 東京小考]소비세는 일본정치의 ‘요괴’

입력 | 2012-06-28 03:00:00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현재 5%인 일본의 소비세가 2014년 8%, 2015년 10%로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과 야당인 자민당 공명당이 협력에 합의했기 때문으로 일본의 재정건전화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가결한 중의원 본회의에서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씨 등이 대거 반대표를 던져 여당이 분열상태에 빠졌다. 다음 총선을 둘러싸고 정치는 다시 격동할 것인가. 소비세는 일본 정치를 흔들어온 요괴(妖怪)였던 만큼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자민당 정권 시절 이 세금을 처음 만들려고 했던 사람은 1979년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총리였다. 오일쇼크 후인 1975년 대장성 대신(현재의 재무대신)이었던 오히라 씨는 크게 떨어진 세수를 보충하기 위해 전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적자국채 발행에 나섰다. 일본 재정이 차입금에 의존하게 된 길을 열었던 것이다. 이에 큰 책임을 느낀 오히라 씨는 자신이 총리가 되자 소비세 도입을 통한 재정 재건을 정면 호소했다.

하지만 총선거가 가까워지자 세금 낭비를 상징하는 사건이 드러났고 증세에 대한 비난이 격렬해졌다. 이래서는 선거에서 싸울 수 없다는 의원들의 반대가 거세져 오히라 총리는 할 수 없이 방침을 철회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패배로 끝났고 당내에서 퇴진 요구가 거세지면서 파벌 간 ‘40일 투쟁’이라는 긴 혼란이 연출됐다. 한국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즈음의 이야기다.

역대 정권 수명 단축시켜


오히라 씨는 겨우 정권을 유지했지만 이 대립이 꼬리를 끌면서 다음 해 5월 내각불신임안이 가결됐다. 오히라 씨는 중의원을 해산해 대항했지만 심신이 지쳐 선거전이 한창일 때 심장병으로 급사했다. 원인을 따져보면 소비세가 오히라 씨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그로부터 7년 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는 매출세 도입에 나섰다. 이름과 설계를 바꾸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소비세와 비슷한 세금이었다. 전년에 치른 중·참의원 양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승했기 때문에 힘으로 밀어붙이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카소네 씨는 선거 때 “대형 간접세는 도입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결국 야당과 언론이 “공약 위반”이라고 크게 반발해 결국 이 세금도 버려졌다. 5년에 이르는 장기 집권을 자랑한 나카소네 씨도 이 요괴에게는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 총리에 지명된 것은 여당 야당과 깊은 인맥을 갖고 있고 정치술도 뛰어났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씨였다. 결국 예상이 적중해 오히라 씨 이래의 비원(悲願)은 1988년에 결실을 봤다, 세율 3%로 마침내 소비세 도입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마침 리크루트 사건이라는 정계의 일대 스캔들이 겹쳐 다케시타 총리는 소비세를 선물로 남겨두고 퇴진했다. 이어 총리가 된 우노 소스케(宇野宗佑) 씨는 자신의 여성 스캔들까지 겹치며 직후의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해 2개월 정도의 초단명으로 총리직을 끝냈다.

인기 있는 총리라도 이 세금으로 크게 덴 사례가 있다. 1993년 자민당 정권이 무너진 뒤 연립정권을 이끈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총리는 신선한 정치 스타일로 발군의 인기를 자랑했지만 1994년 2월 갑자기 국민복지세 구상을 발표했다. 이른바 소비세를 포장만 바꾼 것으로 복지를 목적으로 한 세율 7%의 새 세금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이를 뒤에서 조종한 것은 놀라지 마시라. 지금 ‘반대’의 기를 흔드는 오자와 이치로 씨였다. 이때는 호소카와 연립정권의 중심인물이었다.

하지만 당돌한 발표였기 때문에 여론은 물론이고 연립여당 내 각 당에서도 반발이 분출해 호소카와 씨는 복지세 구상을 깨끗이 철회하고 사죄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 호소카와 씨는 2개월 후에 정권을 내던졌다. 요괴가 정권의 수명을 단축시킨 것에 틀림없다.

이후 소비세 세율이 5%로 오른 경위는 생략하기로 하고, 이번 인상 결정은 약 18년 만이다. 자민당은 원래 인상을 주장하고 있었던 만큼 이번에 협력했지만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다. 3년 전 총선거에서 “세금 낭비를 철저히 없애 소비세를 4년간은 인상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정권교체에 성공했던 만큼 공약 위반이라는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권력투쟁 도구로 이용 말아야


확실히 모순이긴 하지만 애초 공약에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노다 정권이 궤도 수정에 노력해온 것도 사실이다. 오자와 씨는 무책임한 공약을 내걸었던 사실은 모른 체하며 “정권교체의 원점으로 돌아가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최후의 승부일 것이다.

한편으로 신경 쓰이는 점은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역시 소비세 증세를 비판하며 국정 진출을 엿보고 있는 것이다. 순수한 정책토론은 대환영이지만 국민의 불안을 배경으로 이 요괴를 이용하는 권력투쟁만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일본은 그럴 여유가 이미 없기 때문이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