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내야 종” 독재 맞서 언론수호국내 최초 ‘동아문화센터’ 설립도
고인은 1919년 황해 옹진군에서 오택관 전 제헌국회 의원의 외아들로 태어나 일본 릿쿄(立敎)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자유당 정부 시절인 1956년 37세의 나이에 공보실장에 임명됐다. 1961∼62년 공보부 장관, 1970∼74년 기독교방송 운영위원장, 1983∼85년 동아일보 사장, 1985년 한국로타리총재단회의 의장을 지내며 언론발전과 사회봉사활동에 힘썼다.
고인은 1977∼1985년 동아일보 이사와 사장으로 재직하며 군사정권의 탄압 아래서도 언론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소신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1983년 3월 3일 사장 취임사에서 고인은 “고난 뒤에 영광이 오는 것이 아니고 고난 자체가 영광”이라며 “종은 소리를 내야 종이며, 노래는 노래 불러야 노래이며, 사랑은 사랑을 해야 사랑인 것처럼 동아일보는 이 시대의 민중이 갈망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자”라고 역설했다. 이 취임사는 3월 7일자 본보에 ‘독자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5·16 군사정부 시절 첫 민간인 출신 공보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현역 언론인 40여 명을 해직시키라는 상부의 지시를 거부한 일화도 있다.
노년에는 사회봉사활동에 진력했다. 장애자재활협회 부회장, 한국로타리총재단회의 의장, 주한 미국 연합봉사기구 명예회장 등을 지내며 사회의 그늘진 곳을 밝히는 데 힘썼다. 2007년 미수(米壽)를 맞아 펴낸 ‘로타리, 나의 보람’ 출판 기념회에서 고인은 “봉사를 통해 내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한 로타리의 어제와 오늘이 고마워서 이 글을 남겼다”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보희 씨(한국사회정보연구원장)와 외아들 종열 씨(국제로타리 3650지구 국제대회 참가촉진위원장), 며느리 조혜경 씨(명지전문대 음악과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8호실, 발인은 30일 오전 7시 반이다. 장지는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 가족묘원. 02-2072-2027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