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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북 카페]세계 휩쓸던 日기업들 “왜 한국에 밀려났나” 절치부심 ‘실패연구’

입력 | 2012-06-30 03:00:00

‘超입문 실패의 본질’




일본이 아시아 침략을 본격화한 1930년대 후반, 일본군 간부 후보를 양성하던 기관인 육군대학교에서 교관이 질문을 했다. “1932년 1차 상하이 전투를 했을 때 일본군은 하루 1500m 진군했다. 하지만 5년 뒤 2차 상하이 전투 때는 하루 1000m도 진군하기 힘들었다. 일본의 정예 제7사단이 1937년 전투에서 이처럼 악전고투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 당시 학생이었던 호리 에이조(堀榮三)가 답했다. “그것은 ‘철의 양’ 때문입니다.” 방위를 아무리 견고하게 쌓더라도 자동소총과 대포 등 철제 무기를 대량 투입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승패는 투입된 철의 양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을 호리는 꿰뚫어 보았다.

졸업 후 대본영(일왕 직속의 육해군 최고 통수부) 육군부에서 참모가 된 호리는 1943년 11월 태평양 중부에 있는 타라와 섬 전쟁에서 철의 위력을 실감했다. 미군은 섬에 상륙하기 전 포탄 360t, 소총 실탄 90t 등 무려 450t을 퍼부었다. 미 해병대가 섬에 상륙하기 전 이미 일본군은 막대한 피해를 봤다. 당시 호리는 생각했다. ‘미군과 철의 양으로 맞서서는 안 된다. 철을 무력화하는 새로운 전법이 필요하다.’ 그는 △바다에서의 함포 사격을 무력화하기 위해 섬 중앙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방어벽은 포탄에 견딜 수 있도록 두께 2.5m의 콘크리트로 만들며 △지하 땅굴을 파게 했다. 기존 방어법을 완전히 뒤집는 새로운 발상이었다. 그 후부터 미군의 진격은 눈에 띄게 더뎌졌다.

이 내용은 1984년 발행된 ‘실패의 본질’에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벌였던 수많은 전투 중 패배했던 전투를 분석해 패전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또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분석한 책이다.

최근 이 책이 다시 일본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지난해 일어난 쓰나미와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고, 형편없는 리스크 관리, 정부의 정보 은폐 등 일련의 사태가 태평양전쟁 당시의 실패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속에 올해 4월 ‘초(超)입문 실패의 본질’(다이아몬드)이 나왔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실패의 본질을 읽기 전에 살펴보는 입문서 성격이 강하다. 저자인 스즈키 히로키(鈴木博毅)는 원서가 400쪽 이상이고 내용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새 책을 쉽게 쓰는 데 주력했다. 또 무역상사와 컨설팅 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전쟁의 실패 사례를 현재 일본 기업과 엮어 설명했다.

육군 참모 호리의 사례는 ‘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부분에 등장한다. 저자는 최근 파나소닉 샤프 소니 등 일본 대표 기업들이 부진에 빠져 있는 것도 이노베이션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때 세계를 석권했던 일본 가전 기업들은 ‘고성능 기능’에만 파고들다 보니 시장의 판을 바꾸는 새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 사이 한국과 대만의 기업들이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제품을 더 싸게 만들어 일본 기업들을 위협했다.

그럼 일본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전쟁 사례에서 답을 찾았다. 먼저 시장의 주류를 확인하고(철의 양), 그 주류를 무력화하는 기술을 찾아내야 한다(콘크리트 방어벽, 지하 벙커). 그 기술로 만든 제품을 시장의 새 주류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 아이폰을 만들었던 것처럼.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