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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축구 악동’ 발로텔리

입력 | 2012-07-02 03:00:00


고3 아들을 둔 엄마들은 요즘 “삼재(三災)가 닥쳤다”고 한숨을 쉰다. 디아블로3, 런던 올림픽, 그리고 2012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12) 탓에 남학생들의 수능 평균이 내려갈 거라고 걱정이다. 유로2012는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했다. 유럽 경제 위기가 유로2012 흥행에는 플러스 요인이었다. 관객은 채권국과 채무국 간 경기를 스포츠가 아닌 정치 대결로 즐겼다. 정치적 축구의 결정판이 지난달 29일 열린 독일-이탈리아의 준결승전. 이날 결승골을 넣은 마리오 발로텔리(22)가 웃통을 벗어던지고 보여준 ‘헐크 세리머니’는 옐로카드를 받음과 동시에 유로2012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는 이날 아주리 유니폼을 입은 선발 출전 선수 중 유일한 흑인이었다.

▷그가 두 골을 몰아넣으며 2-1로 이탈리아의 결승행을 확정짓자 이탈리아 일간지 리베로는 1면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얼굴이 그려진 축구공을 발로텔리가 뻥 차버리는 그림을 게재했다. 일 조르날레는 “유로를 떠날 사람은 메르켈 당신”이라고 흥분했다. 마침 경기가 있던 날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이탈리아의 국채금리 상승을 막아준다는 결정을 끌어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슈퍼마리오 2명이 이탈리아를 구제했다”는 논평이 나왔다.

▷발로텔리를 치켜세우는 언론은 하루 전까지만 해도 어린 선수에게 다트를 던지고 험악한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니는 ‘악동’ 발로텔리의 면모를 보도하기에 바빴다. 입양아 출신인 발로텔리는 가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스포츠 세계에도 피부색은 문제가 된다. 그의 고약한 성질머리는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의 의미도 담고 있다. 최근 1년간 이탈리아 축구 챔피언십 도중 인종과 관련한 사건은 59건, 부과된 벌금이 40만 유로(약 5억8000만 원)가 넘는다.

▷발로텔리의 선전을 계기로 이탈리아 거주 외국인 부모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이에게 이탈리아 시민권을 주는 ‘발로텔리 법’이 제기됐다. 발로텔리의 골 결정력은 빚더미에 눌린 이탈리아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 줬을 뿐 아니라 묵직한 과제도 내준 셈이다. 5월 브라질 출신 축구선수 에닝요(전북)의 특별 귀화 추진이 무산된 바 있다. 발로텔리 법이 그러하듯 에닝요의 귀화도 다문화사회 한국의 포용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