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교수 제공
일본 제약회사인 쓰무라준텐도(津村順天堂)의 중장탕 광고(매일신보 1921년 7월 15일)를 보자. 수영복 차림을 한 늘씬한 미녀가 도도하게 서 있다. “이(罹)하기(걸리기) 이(易)한(쉬운) 하(夏·여름)의 부인병”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이런저런 보디카피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장식적 요소로 쓰였을 뿐. 계절성을 고려한 디자인 감각은 요즘 수준에도 뒤처지지 않는다. 볼거리가 적었던 그 시절엔 선으로 그려낸 모델의 자태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으리라.
모델이 휘감고 있는 수영 튜브에 중장탕(中將湯)이 아닌 CHUJOTO(추조토)라고 영문으로 쓴 까닭은 브랜드 이름을 이국적으로 알리려는 속셈. 당시에 영어는 언어이기 전에 어떤 신비적 상징이었으니까. 모델의 눈짓도 이국적이다. 정면을 보지 않고 먼 산 보듯 응시하는 모델의 시선은 그저 신비로울 수밖에. 영화 주인공과 관객이 세 가지 시선(자아도취, 관음, 물신숭배)을 교환한다는 그레임 터너의 주장에 기대면, 사람들은 자아도취적 시선을 주고받고 광고 모델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피서를 떠났으리라.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