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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 숨은 꽃]LG아트센터 ‘피아노 전신’ 쳄발로 조율사 김영익 씨

입력 | 2012-07-05 03:00:00

현을 치지 않고 뜯는 방식… 피아노보다 예민




쳄발로 조율사이자 류트 연주자 겸 제작자인 김영익 씨.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챙챙챙 울리는 쳄발로 소리는 한 번 들으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피아노의 전신인 쳄발로는 16∼18세기 전성기를 누린 고(古)악기다. 국내에서 고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무대에서 쳄발로를 접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됐다.

김영익 씨(55)는 LG아트센터의 쳄발로 전담 조율사다. 대당 3000만∼6000만 원을 호가하는 쳄발로는 나무 틀 자체에 현을 고정했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피아노는 나무 해머로 현을 때려 소리를 내지만 쳄발로는 새의 깃대를 깎아 만든 픽(촉)으로 현을 타는(뜯는) 방식이어서 손상을 입기 쉽다. 피아노는 평균율(조바꿈이 자연스럽도록 수학적으로 계산해 조율한 음율)을 사용하지만 쳄발로는 순정률(자연 상태의 음률)을 쓰기 때문에 음계에도 밝은 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쳄발로를 전문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조율사는 국내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쳄발로 공연이 있는 날이면 김 씨는 리허설 전과 후, 연주회 직전, 휴식시간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조율을 한다. 예민한 악기인 만큼 연주자가 직접 조율법을 습득하기도 하지만 연주회 때는 일일이 신경을 쓰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 조율사가 필요하다. 류트 연주자이자 제작자이기도 한 김 씨는 “한국에서는 고음악 연주가 시작단계여서 쳄발로 조율 횟수가 많지는 않다. 내 경우 피아노 15대를 조율할 때 쳄발로는 1대 정도 만진다”고 말했다.

청년시절 김 씨는 클래식 기타에 빠졌다. 집안형편이 여의치 않아 다른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음악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해외유학을 결심했고 유학 자금을 모으기 위해 1980년 1급 피아노조율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유학 가서도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10년간 조율을 하며 모든 돈으로 1990년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류트 전공)을 떠났다. 그러다 1993년 이탈리아 로케타 네르비나에서 열린 고음악 캠프에서 쳄발로를 만났다.

“독특한 음색에 금세 빠져들었습니다. 캠프를 하는 내내 매일매일 쳄발로 5대를 조율하기 시작했지요. 당시에는 쳄발로 조율법을 몰라 일반 피아노를 조율하는 방식으로 만졌는데도 캠프 참가자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신기하고 재밌는 작업이었지요.”

이후 다른 고음악 캠프에서 쳄발로 조율 강의를 들은 뒤 쳄발로 제작자들을 찾아다니며 본격적으로 배웠다. 유학비를 벌기 위해 현지에서도 피아노 조율을 하던 그는 꾸준한 노력 끝에 밀라노의 음악교육기관인 아카데미아에서 쳄발로, 포르테피아노, 피아노 전속 조율사로 9년간 근무하다 2003년 귀국했다. 유학시절 베니토 무솔리니의 아들인 로마노의 재즈 피아노 연주회 때 조율을 맡은 적도 있다.

그는 “쳄발로 조율에 관심이 있다면 피아노 조율법부터 시작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조율은 단기간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경험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