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이 툭툭… 설레게 하는 숲길이죠
2일 밤 서울 강동구 길동 강동그린웨이 숲길을 걷던 민용태 고려대 명예교수가 가로등 밑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일자산 일원에 조성된 3.5km 길이의 강동그린웨이 숲길은 1시간 반 정도면 편하게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고교 시절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할 꿈을 꾸던 민 교수는 우연히 친구 따라 스페인어 문학 강좌에 갔다가 스페인 문학에 반해 무작정 한국외국어대 서반어문학과로 진학했다. 이렇게 41년 전 시작된 스페인과 그의 인연을 2일 오후 서울 강동구 길동 일자산에 조성된 ‘강동그린웨이’를 걸으며 들어봤다.
○ 산과 시가 유일한 위안
“산책로를 걸으며 매일 보는 나무들과 인사도 하고 만져주기도 하면서 서로 기운을 나누는 거야. 요샌 그게 내 유일한 위안이지.”
편한 운동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민 교수가 저녁식사를 끝내고 산책을 시작하면서 나무에 손을 얹은 채 말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자 하늘이 노란색에서 검푸르게 변해갔다. 민 교수는 교단에서 은퇴한 뒤 산에서 영감을 얻으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봄부터 산길 따라 피어 있던 진달래와 찔레꽃, 산딸기, 옻나무를 떠올리며 이날도 ‘파란 마법의 성’이라는 제목의 시를 즉석에서 써 내려가기도 했다.
그는 대학을 마칠 무렵인 1968년 농사꾼이었던 아버지를 설득해 전 재산이었던 논 8마지기 중에 3마지기를 팔아 스페인행 비행기 삯을 마련했다. 아버지는 외국으로 나가는 아들을 위해 소 2마리까지 팔았다. 그해 25세의 나이로 창작과비평 겨울호를 통해 등단한 민 교수는 스페인에 건너간 지 2년 만에 스페인어로 쓴 시 ‘우화’를 통해 마차도문학상을 탔다. 당시 익명으로 작품을 제출하게 돼 있던 터라 심사위원들도 상을 받으러 온 작가 ‘살라만카’가 동양인 민 교수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후로 그는 지금까지 스페인어 시집을 6권이나 내고 수백 편의 시를 써왔다. 2009년에는 스페인 왕립 한림원 종신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 숲과 함께 여름밤 나기
이처럼 숲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야간 숲길을 산책하고 싶다면 매주 금·토 오후 7시 반부터 2시간씩 무료로 운영되는 ‘야간 숲길여행’에 참여하면 된다. 8월 31일까지 운영되며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매주 둘째, 넷째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운영되는 ‘숲 이야기가 있는 그린웨이 걷기’ 프로그램도 있다. 두 프로그램 모두 강동구 푸른도시과(02-480-1395)로 신청하면 된다.
민 교수는 자연이야말로 우리 삶에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자연은 낙관주의자야. 늘 웃고 있잖아. 우리도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행복하게 살면 얼마나 좋겠어.”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