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퀸스라이크 ‘스위트 시스터 메리’(1988년) 》
니키는 병상에 누워 있다. 큰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그는 멍하다. 병실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단초로 잡히지 않는 기억의 편린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플래시백.
니키는 사회변혁을 꿈꾸는 지하조직을 이끄는 ‘닥터 엑스’의 사상에 빠져들었다. 닥터 엑스는 추종자들 위에 교주처럼 군림한다. 니키는 그가 권하는 ‘마인드크라임’ 수술을 받는다. 일종의 세뇌다. 헤로인 중독의 늪에까지 빠진 니키는 닥터 엑스의 지시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닥터 엑스의 조종 아래 사회 유력인사들을 제거하는 오른팔, 암살자로 거듭난다. 조직의 비밀 요원인 윌리엄 신부, 메리 수녀와 가까워진다. 메리에게 연정을 느낀다. 메리는 거리의 여인에서 수녀로 옷을 바꿔 입은, 음영이 짙은 여인이다. 근엄해 보이는 윌리엄 신부는 로만 칼라 아래로 메리를 유린하는 이중인격자다. 니키는 조직에 대한 환멸과 니키를 향한 사랑으로 점점 감긴 눈을 뜨기 시작한다.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은 메탈리카의 ‘…앤드 저스티스 포 올’, 슬레이어의 ‘사우스 오브 헤븐’ 등이 나온, 헤비메탈의 올림픽 같은 해였다. 그해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이 10분 41초짜리 대곡 ‘스위트 시스터 메리’가 수록된 퀸스라이크의 ‘오퍼레이션: 마인드크라임’이다.
‘오퍼레이션…’은 15곡, 59분의 러닝타임이 위에 기술한 하나의 스토리라인을 갖고 전개되는 ‘콘셉트 앨범’이자 ‘록 오페라’다. 한 편의 소설을 연주한 셈이다.
‘스위트 시스터 메리’는 앨범의 정중앙인 8번째에 위치한 트랙이다. 닥터 엑스와 니키의 대화와 음산한 빗소리로 시작되는 곡의 인트로가 비 오는 밤이면 생각난다. 이런 밤 ‘스위트 시스터 메리’를 들으면 찢어지는 마음을 안고 교회로 향하는 니키, 그 1인칭이 되곤 한다. 곡 제목의 ‘스위트’는 달콤한 ‘sweet’가 아닌, 모음곡을 뜻하는 ‘suite’다. 중의와 반어를 섞어놓은 셈이다.
메리 역의 여성 보컬과 대화하듯 주고받는 제프 테이트의 애절한 보컬과 가사, 강약완급을 오가는 치밀한 곡 구성은 프로그레시브 메탈(진보적인 헤비메탈)의 이상적 모습을 보여준다.
‘오퍼레이션…’ 앨범 발매 18년 뒤, 퀸스라이크는 ‘오퍼레이션: 마인드크라임 II’(2006년)를 내놓는다. 메리와 닥터 엑스, 니키는 음악 속에 다시 등장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퀸스라이크는 ‘II’를 발매한 뒤 대형 스크린 영상과 애니메이션, 특수효과가 가미된 ‘오퍼레이션 I’과 ‘II’의 스토리 전체를 들려주는 라이브쇼를 열었다고 한다.
이런 계절이면 비 오는 밤들이 자주 창가를 부딪는다. 내 삶이 당장 거대한 비극이 아니라는 건 다행한 일이다. 어쩌면 현실이 비극이 아니기에 허구의 비극을 쾌적하게 바라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창밖의 비는 내 보금자리를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기에 낭만적이고 감상적이다. 그래도 비극은 희극보다 더 변혁을 향해 있다. 학부 시절 노교수가 말씀하셨다.
“해피엔딩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 비극만이 민초를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고.”
윤희림 과학자, 로커, 래퍼. 세 꿈 다 못 이뤘다. 심지어 어른도 못 됐다. 안 되면 또 어때. 음악이 있는데.
theugly7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