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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형삼]고래잡이

입력 | 2012-07-07 03:00:00


드라마 ‘대장금’에 장금이가 고래고기로 산적을 만드는 장면이 있다. 미각을 잃은 데다 고래고기를 못 먹어본 장금이가 궁중 숙수(熟手·조리사)에게 어떤 맛이냐고 묻자 “쇠고기와 비슷하다”고 답한다. 1980년대 초 부산 자갈치시장 좌판에서 몇 번 사먹은 고래고기 수육도 생선보다는 쇠고기 맛에 가까웠던 것 같다. 고래가 어류가 아니라 포유류라서 그런 걸까. “쇠고기와 참치를 함께 입에 넣은 느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의 일식당 중에 고래고기를 내놓는 곳이 있지만 대부분 돌고래고기라 미식가들은 ‘진짜 고래고기’로 쳐 주지 않는다.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에서 우리 대표단이 “과학연구 목적의 포경 계획을 IWC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IWC가 1986년부터 멸종위기 고래에 대한 포경을 금지한 이후 동해에 고래가 늘어나어업 피해가 크다고 한다. 호주 뉴질랜드 등 포경 반대 국가들은 반발한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주요 쇠고기 수출국이라 반대의 속뜻이 순수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고래고기가 맛이 비슷한 쇠고기의 대체재가 될 것을 우려해 포경에 반대하는 걸까.

▷신석기시대에 새겨진 울산 반구대암각화에는 고래의 습성과 사냥 모습이 담겨 있다. 포경선을 이용한 고래잡이도 1899년 울산의 장생포에서 시작됐다. 외국 포경선들이 길이 20m가 넘는 대왕고래 참고래 귀신고래의 씨를 말렸다. 광복 후엔 밍크고래가 주로 잡혔다. 한때 “장생포에선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만큼 고래 특수(特需)를 누렸으나 포경 금지 이후에는 다른 고기를 잡으려고 쳐놓은 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만 허용됐다. 경찰은 혼획된 고래에 금속탐지기를 들이대고 흉기를 사용한 흔적이 없는지 살핀 뒤 ‘타살’이 아닌 것으로 판명돼야 유통증명서를 내준다.

▷고래잡이에는 로망이 있다. 낚시나 그물을 드리워 놓고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직접 쫓아가 격렬하게 맞붙어 싸운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 숨을 쉬러 바다 위로 올라오는 짤막한 틈을 놓치지 않고 작살을 꽂아 넣는다. 인간의 꿈, 의지, 도전을 상징하는 사냥이다. 세상과의 불화로 고뇌했던 1970년대 청년들은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를 잡으러 떠나자고 고함치듯 노래를 불렀다. 고달픈 요즘 청년들도 마음속에 ‘예쁜 고래 한 마리’ 헤엄쳤으면 좋겠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