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장강명]대선 슬로건

입력 | 2012-07-09 03:00:00


“누군가 성공하면 반드시 실패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것도 성공하는 사람 한 명에 실패하는 사람 여러 명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 행복하더라도 그게 타인의 불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07년 17대 대선 때 ‘가족이 행복한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정동영 후보 캠프의 설명이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정 후보에 앞서 ‘국민 성공시대’를 구호로 내걸었다.

▷설명은 그럴싸하게 들렸지만 대선 구호로서 ‘가족이 행복한 나라’는 몇 가지 약점이 있었다. 우선 이 슬로건의 장점을 말하려면 상대방의 메시지를 먼저 언급해야 했다. 햇빛을 반사하는 달처럼, 혼자서는 빛을 발할 수 없는 구호였던 셈이다. 방송기자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 후보의 이력이나 이미지가 ‘가족, 행복’이라는 가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2007년에 국민이 품고 있던 요구, 거창하게 표현해 시대정신은 ‘행복’보다는 ‘성공’에 기울어 있었다. 슬로건 탓만은 아니겠지만 정 후보는 17대 대선에서 530만 표 차로 졌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은 절묘하다. 대선 삼수(三修)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도리어 장점으로 보이게 했다.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국난을 겪고 있던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며 다가가는 효과도 있었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내건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는 그 자체로는 썩 매력이 있는 언어의 조합은 아니다. 하지만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지닌 개혁적인 이미지에 잘 어울렸고, 오히려 야당 후보인 이회창 후보를 ‘기존 체제의 연장선에 있는 인물’로 보이게 했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가 8일 각각 대선 슬로건을 공개했다. 박 전 위원장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김 전 지사는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국가를 향하여’를 택했다. 자신들을 향한 국민의 질문이 “당신이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뭡니까?”라고 여겼던 것 같다.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슬로건은 ‘저녁이 있는 삶’이다. 좋은 캐치프레이즈는 ‘지금의 시대정신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준다.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미래 비전이 함께 담겨야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장강명 산업부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