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은 그럴싸하게 들렸지만 대선 구호로서 ‘가족이 행복한 나라’는 몇 가지 약점이 있었다. 우선 이 슬로건의 장점을 말하려면 상대방의 메시지를 먼저 언급해야 했다. 햇빛을 반사하는 달처럼, 혼자서는 빛을 발할 수 없는 구호였던 셈이다. 방송기자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 후보의 이력이나 이미지가 ‘가족, 행복’이라는 가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2007년에 국민이 품고 있던 요구, 거창하게 표현해 시대정신은 ‘행복’보다는 ‘성공’에 기울어 있었다. 슬로건 탓만은 아니겠지만 정 후보는 17대 대선에서 530만 표 차로 졌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은 절묘하다. 대선 삼수(三修)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도리어 장점으로 보이게 했다.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국난을 겪고 있던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며 다가가는 효과도 있었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내건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는 그 자체로는 썩 매력이 있는 언어의 조합은 아니다. 하지만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지닌 개혁적인 이미지에 잘 어울렸고, 오히려 야당 후보인 이회창 후보를 ‘기존 체제의 연장선에 있는 인물’로 보이게 했다.
장강명 산업부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