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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Hot 피플]CNN 간판 앵커 앤더슨 쿠퍼

입력 | 2012-07-09 03:00:00

“나는 게이” 발표 후에도 美여성들은 “섹시 가이”




《 지구촌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본보는 하반기 지면 개편을 맞아 ‘글로벌 핫 피플’을 신설합니다. 한 주 동안 세계인들의 화제가 된 사람들을 택해 그들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첫 회 인물은 “나는 게이”라고 선언해 그를 좋아하는 지구촌 여성들의 마음을 흔든 CNN 간판 앵커 앤더슨 쿠퍼 씨입니다. 》

앤더슨 쿠퍼 씨(왼쪽)가 2일 동성 애인인 벤저민 메이사니 씨와 미국 뉴욕 시 웨스트 빌리지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사진출처 짐비오

“(이번에) 미국을 강타한 폭풍은 동부가 아니라 CNN 앵커의 입에서 나왔다.”

미국 뉴스사이트 허핑턴포스트는 5일 CNN 간판 앵커 앤더슨 쿠퍼 씨(45)의 ‘게이 커밍아웃(동성애자라고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이 미국인들 사이에 얼마나 큰 화제가 되고 있는지 이렇게 전했다.

2일 커밍아웃 발표 후 쿠퍼 씨는 연일 구글, 야후의 검색어 1위에 오르고 있으며 주요 신문 방송은 커밍아웃이 그의 인기, 동성애 운동, 심지어 CNN에 미칠 영향까지 분석하느라 바쁘다. 쿠퍼 씨는 해외출장 관계로 커밍아웃 발표 후 일주일 동안 TV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5일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이 동성애자라고 밝혔지만 쿠퍼 씨의 발표가 유달리 주목을 받는 것은 저널리스트로서 그가 가지는 중요한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쿠퍼 씨는 유명 가문 출신, 명문대 학력, 잘생긴 외모 등 좋은 조건을 고루 갖췄는데도 편안한 삶을 거부하고 재난과 전쟁 지역을 쫓아다니며 고통받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뉴스를 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쿠퍼 씨는 미국의 10대 부호 가문 중 하나인 밴더빌트가의 후손이다. 5대조 외할아버지가 미국 철도사업을 독점해 돈을 모은 코닐리어스 밴더빌트이고 어머니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글로리다 밴더빌트 씨이다. 쿠퍼 씨는 술 마약 등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다른 명문가 후손들과는 달리 착실하게 자라 예일대 정치학과를 우등 졸업했다.

유명 작가였던 아버지 와이어트 에머리 쿠퍼에게서 글재주를 물려받은 그는 대학 졸업 후 기자가 되기 위해 ABC방송의 문을 두드렸지만 방송국 측은 경험 없는 그를 단번에 퇴짜 놓았다.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좌우명을 가진 그는 직접 자비를 들여 카메라를 짊어지고 미얀마(당시 버마)에 가서 반정부 운동을 취재해 소규모 방송국들에 기사를 보냈다. 이후 4, 5년 동안 소말리아, 보스니아, 르완다 등 분쟁 현장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경험을 쌓은 그는 1995년 마침내 ABC 기자로 입사해 앵커 자리에까지 올랐다. 2001년 CNN으로 자리를 옮겨 CNN 간판 뉴스쇼 ‘360°’를 진행하는 동시에 동남아 쓰나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서거, 아이티 대지진 등 주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앵커 자리를 박차고 직접 현장으로 날아가 마이크를 잡고 진행했다.

쿠퍼 씨에게 최고의 재난전문 기자라는 명성을 가져다준 것은 2007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였다. 그는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뉴올리언스 현장에서 구조작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주민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고발하고 시장, 주지사 등을 상대로 송곳 같은 질문 공세를 퍼부어 미국인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이후 ‘CNN의 골든 보이’라는 별명과 함께 미국 최고의 저널리스트 반열에 올랐고 2010년부터 ‘앤더슨’이라는 케이블 토크쇼도 진행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쿠퍼 씨는 지난달 자신의 토크쇼에 어머니를 초대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어머니와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형의 자살에 대해 얘기해 화제가 됐다. 쿠퍼 씨는 “네 번이나 결혼하고 유명인들과 염문을 뿌리는 등 사생활이 복잡한 어머니지만 사랑한다”며 “어머니와 나는 형의 자살을 겪으면서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재원이었던 그의 형 카터 쿠퍼는 1988년 가족의 뉴욕 초호화 아파트 14층에서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자살의 원인은 당시 복용하던 축농증 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일시적 정신착란으로 알려졌다.

쿠퍼 씨는 “소중한 가족을 잃으면서 생명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형의 자살이 전쟁과 재난을 취재하는 기자가 된 중요한 동기”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당시 쿠퍼 씨가 토크쇼에서 자신의 힘든 가족사를 밝힌 것이 게이 커밍아웃에 용기를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쿠퍼 씨가 게이라는 사실은 미 언론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로 2007년 동성애 잡지 ‘아웃’은 ‘유리 벽장 속의 게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쿠퍼 씨를 표지모델로 싣기도 했다. 쿠퍼 씨의 연인은 뉴욕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벤저민 마이사니라는 남성으로 알려졌다.

쿠퍼 씨의 게이 커밍아웃을 바라보는 미국 사회의 시선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크게 변했을 뿐만 아니라 쿠퍼 씨가 이번 발표에서 그동안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이유와 심적 변화 등을 솔직히 고백했기 때문이다.

쿠퍼 씨는 “게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이로 인해 취재원을 대하는 것이 힘들어질까 봐 걱정했다”며 “그렇지만 동등과 포용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커밍아웃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쿠퍼 씨가 언론계에서 가지는 위치로 볼 때 그의 커밍아웃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 발표 후 불고 있는 동성애자에 대한 관용적 분위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성들 사이에서 쿠퍼 씨의 인기도 여전하다. 쿠퍼 씨는 미국에서 수년 동안 가장 섹시한 남성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쿠퍼 씨의 게이 발표 후 트위터에는 “쿠퍼가 게이일지 몰라도 여전히 나에게는 가장 섹시한 남성”이라는 여성들의 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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