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총장은 2005년 “여자는 선천적으로 수학과 과학을 못한다”고 말했다가 총장 연임에 실패했다. 하버드대는 그 후유증을 극복하고자 후임 총장에 여성 역사학자인 길핀 파우스트를 선임했다. 서머스 총장은 여자가 수학과 과학을 못한다는 근거로 수학·과학자 가운데 여성이 드물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의 발언은 절반만 맞았다. 과거에 여성 수학·과학자가 적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달라지고 있다. 1970년 미국의 여성 수학박사는 8%에 불과했지만 2009년엔 32%나 된다.
▷남자는 공간지각력이 뛰어나고 여자는 언어이해력이 우수하다는 것은 오랜 통념이다. 하지만 이런 통념은 잘못됐을지도 모른다.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진이 86개국 학생들이 치른 수학시험 성적을 비교했더니 성차별이 없는 나라일수록 남녀 간 점수차가 적었다. 성 평등이 최고 수준인 아이슬란드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실력이 뛰어났고 노르웨이나 스웨덴은 점수차가 없었다. 여학생이 수학을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여학생의 실력 상승을 가로막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여성이 수학에 약하다는 통념은 뿌리가 깊다. 아인슈타인도 인정한 독일 여성 수학자 에미 뇌터의 강사 임용이 거부되자 그녀를 추천한 수학자가 “대학이 목욕탕인가요”라고 했다는 얘기가 유명하다.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제12차 국제수학교육대회(ICME-12)에 참석한 잉그리드 도비시 국제수학연맹(IMU) 회장은 “여자가 계산에 약해 수학을 잘 못한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말했다. 부모나 교사가 여학생에게 수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직업을 권유하거나 “수학 잘하는 여자는 까다롭다”는 남자의 편견을 여자가 내면화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과목에서는 전통적으로 남학생의 점수가 높다. 서울의 한 명문대학이 여자 신입생을 덜 받으려고 수학문제를 어렵게 냈다는 실화도 있다. 하지만 격차는 좁혀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년마다 시행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2000년 남녀 간 수학 점수차는 27점이었지만 2009년에는 4점으로 좁혀졌다. ICME 홍보위원장인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추상적인 기호나 도형을 쓰는 대신 최근 실생활에의 응용이나 의사소통을 강조하는 수업방식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