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 맨발투혼 보고 美진출 꿈꾼 최나연, 롤모델이 우승한 그곳서 US오픈 우승 샴페인 들고 온 세리 “네가 자랑스럽다”
최나연 US여자오픈 우승 최나연(왼쪽)이 9일 제67회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직후 대선배 박세리(오른쪽)를 비롯한 동료 선수들에게서 샴페인 세례를 받고 있다. 박세리는 1998년 7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같은 대회에서 연못까지 들어가 공을 쳐내는 ‘맨발 투혼’(아래 사진)을 발휘한 끝에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최나연은 10일 오후 금의환향한다. 콜러=AP 연합뉴스·동아일보DB
제67회 US여자오픈이 막을 내린 9일 미국 위스콘신 주 콜러의 블랙울프런골프장. 최나연(25)이 우승을 확정지은 18번홀 그린을 향해 누군가가 샴페인 한 병을 들고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박세리(35)였다. 후배에게 축하 세례를 하는 박세리의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최나연도 우상과도 같은 선배의 등장을 놀라워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나연아,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침착했고 참 잘했다.”(박세리) “언니가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어요. 너무 고마워요.”(최나연)
박세리가 누구인가. 박세리는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진출 첫해인 1998년 7월 7일 바로 같은 장소에서 열린 같은 대회에서 연장 20홀을 치르는 격전 끝에 정상에 올랐다. 연장 18번홀 페어웨이 왼쪽 연못까지 들어가 공을 치는 ‘맨발 투혼’으로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떨쳤다. 박세리는 ‘끝내 이기리라’라는 상록수 가사에 실려 국내 공익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국민들은 스물한 살 박세리가 전한 희망의 메시지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그 가운데는 열한 살 꼬마 최나연도 있었다. 경기 오산시에 살며 초등학생 골프선수였던 최나연은 “너무 강한 인상을 받았다. 미국 무대 진출의 꿈을 꾸게 된 계기가 됐다”고 떠올렸다.
강산이 한 번 변할 만큼 세대가 다른 박세리와 최나연. 양말을 벗자 드러난 박세리의 하얀 발목은 새까만 종아리와 흑백의 대조를 이루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공동묘지에서 담력훈련까지 했다는 일화와 함께 성공을 향해 다걸었던 역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박세리가 우승했을 때 홀로 그린에 뛰어든 아버지는 매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개척자 박세리가 물꼬를 트면서 변방이던 한국 여자골프의 세계화도 본격화됐다. 해외 진출이 러시를 이뤘다.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한국인 선수는 박세리가 유일했다. 올해에는 한국 국적 선수만 27명에 이르며 재미교포를 합하면 40명을 육박한다. US여자오픈에서 최나연은 여섯 번째 한국인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주최국 미국(51회)을 빼면 두 번째로 많다. 2001년 이후 메이저대회에서 한국인 우승 횟수는 12회로 미국(10회)을 추월했다.
1998년과 2012년 여름. 박세리와 최나연은 세월을 넘나들며 정겹게 손을 맞잡았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