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뮤지컬 ‘라카지’ ★★★★☆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며 여성적 춤사위는 물론이고 남성 군무까지 끊임없이 펼쳐 내는 뮤지컬 ‘라카지’의 남성 군무진은 이 작품의 숨겨진 보석이다. 이들이 춤추는 나이트클럽 ‘라카지오폴’은 ‘여장 남자들의 소굴’을 뜻하는 프랑스 비속어이지만 극에서는 이를 ‘환상적인 새(게이)들의 둥지’라는 뜻으로 유쾌하게 뒤집었다. 악어컴퍼니 제공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룬 뮤지컬들이 인기다. 하지만 대부분 ‘쓰릴 미’나 ‘헤드 윅’ 같은 소극장이나 중극장용 뮤지컬이다. 동성애코드 공연 시장의 한계를 보여 준다.
4일부터 국내 초연에 들어간 뮤지컬 ‘라카지’는 그 한계에 도전한다. 1973년 발표된 장 푸아레 원작의 프랑스 희곡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옮긴 이 작품은 대극장 뮤지컬이다. 주인공은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에서 동성애 나이트클럽 ‘라카지오폴’을 운영하는 중년의 남자 동성애 커플 조지와 앨빈. 1막의 대부분은 이 클럽에서 펼쳐지는 게이 쇼로 이뤄져 있다. 쉽게 말해 여장한 남자들의 춤과 노래로 가득 찬 뮤지컬이란 소리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음습한 쇼를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밝고 명랑하다. 남자들이 여자들 못지않은 몸매와 맵시를 뽐내는 장면들이 감탄과 웃음을 자아내게 할지언정 자극적으로 다가서진 않는다.
‘남자 맞아’라고 반문하게 만든 김다현의 앨빈(왼쪽)과 ‘천생 아줌마’라며 무릎을 치게 만든 정성화의 앨빈.악어컴퍼니 제공
과연 앨빈은 엄마로서 살아온 지난 20년 세월을 거부당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마담 자자로 변신해선 “밤인지 새벽인지 상관없잖아/꿈인지 현실인지 알려 하지 마”라며 이분법에 갇힌 현실을 한껏 희롱하던 앨빈이 이를 통보받고선 “왜 나면 안 돼/왜 난 안 돼”라며 오열한다.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그 다음에 발산된다. 2막 첫 장면에서 앨빈은 “나 비극의 여주인공 안 할래. 차라리 찬란한 여신, 그거 할래”라며 밝은 모습을 되찾는다. 심지어 아들을 위해 배불뚝이 아저씨 역할까지 감수하며.
이 작품처럼 게이(gay)라는 표현에 걸맞은 동성애 뮤지컬이 또 있을까. 동성애자를 ‘명랑한, 쾌활한’이란 뜻을 지닌 이 영어단어로 부른 이유는 그들이 아이처럼 낙천적 성격을 지닌 경우가 많아서다. 이는 딩동 가족을 맞이하기 직전 장 미셸이 조지와 앨빈에게 주의를 주는 대사에서도 확인된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우리는 평상시 우리가 행복해 했던 주제, 즐거웠던 이야기, 사랑에 대한 표현, 아울러 일체의 신체적인 접촉도 불허합니다. 우리는 일반인처럼 행동해야 돼요. 우리의 주제는…우리가 얼마나 불행한지, 이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우리 각자가 짊어진 인생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번에 앨빈 역으로 발탁된 정성화와 김다현은 각각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와 ‘M. Butterfly’에서 개성 넘치는 남자동성애자 연기를 선보였다. 둘의 앨빈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여우주연상을 노리고 있다’고 밝힌 ‘거미’ 정성화의 앨빈이 드라마에 강하다면 마담 자자로 변신할 때마다 객석의 숨을 멈추게 만드는 ‘나비’ 김다현의 앨빈은 쇼에 강하다. 중장년 관객이라면 생활의 내공이 묻어나는 정성화 남경주 커플, 쓰릴 미를 좋아하는 젊은 관객에겐 매력적 외모의 김다현 고영빈 커플의 무대를 권한다.
6개의 기본 멜로디를 변주해 중독성 강한 뮤지컬 넘버 14개 곡을 뽑아낸 제리 허먼의 작사·작곡 솜씨와 앨빈의 하녀 자코브 역 김호영 씨의 위트 넘치는 감초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 : i : : 이지나 연출. 9월 4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6만∼13만 원. 1566-7527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