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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유신 실세’ 아들의 서글픈 몰락

입력 | 2012-07-11 03:00:00


‘돈 좀 빌릴 수 있을까? 아버지를 봐서라도 사업으로 재기해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서….’

이모 씨(50)는 아버지의 그릇을 뛰어넘는 사업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유신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씨는 승승장구하던 사업가였다. 2001년에는 시중에 있는 신용카드조회기와 달리 신용카드는 물론이고 현금카드까지 쓸 수 있는 ‘복합조회단말기’를 개발해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직원들이 잠든 새벽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전 2시 이전에 퇴근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밤낮으로 일했다”며 독한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 자금에 손을 댔다가 2006년 검찰에 적발됐다. 회삿돈 수십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돼 2009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다. 그 무렵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주변에서는 ‘이후락 부자의 몰락’을 운운했다. 이 씨는 재기를 위해 의사 친구 최모 씨를 찾아갔다. 재기를 위한 종잣돈으로 2억6000만 원을 빌려 달라고 하자 최 씨는 “못 받은 돈이 있는데 대신 받아주면 원하는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세도가의 막내아들이자 한때 잘나가던 사업가가 채권추심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 씨는 친구 최 씨가 돈을 빌려줬다는 유명 방송작가 박모 씨를 찾아갔다. 15억 원이란 큰돈을 빌렸다는 박 씨에게 “내가 채권추심인이니 계좌로 2500만 원부터 부치라”고 했다. 반신반의했지만 진짜로 돈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큰돈이었다.

이 씨는 전에 벌여놨던 사업을 수습하고 새 사업을 준비하는 데 돈을 몽땅 써버렸다. 그 뒤로도 22번이나 더 박 씨를 찾아가 총 4억8600만 원을 받아냈다. 이 돈도 고스란히 새 사업을 준비하는 데 쓰였다. 문제는 그 뒤에 생겼다. 이 씨가 받은 돈을 주지 않고 사업에 쓴 사실을 최 씨가 알아버렸고 최 씨는 이 씨를 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 이승한)는 이 씨를 횡령 혐의로 5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씨는 검찰에서 “박 씨로부터 별도로 빌린 돈”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