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씨(50)는 아버지의 그릇을 뛰어넘는 사업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유신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씨는 승승장구하던 사업가였다. 2001년에는 시중에 있는 신용카드조회기와 달리 신용카드는 물론이고 현금카드까지 쓸 수 있는 ‘복합조회단말기’를 개발해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직원들이 잠든 새벽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전 2시 이전에 퇴근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밤낮으로 일했다”며 독한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이후락 부자의 몰락’을 운운했다. 이 씨는 재기를 위해 의사 친구 최모 씨를 찾아갔다. 재기를 위한 종잣돈으로 2억6000만 원을 빌려 달라고 하자 최 씨는 “못 받은 돈이 있는데 대신 받아주면 원하는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세도가의 막내아들이자 한때 잘나가던 사업가가 채권추심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 씨는 친구 최 씨가 돈을 빌려줬다는 유명 방송작가 박모 씨를 찾아갔다. 15억 원이란 큰돈을 빌렸다는 박 씨에게 “내가 채권추심인이니 계좌로 2500만 원부터 부치라”고 했다. 반신반의했지만 진짜로 돈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큰돈이었다.
이 씨는 전에 벌여놨던 사업을 수습하고 새 사업을 준비하는 데 돈을 몽땅 써버렸다. 그 뒤로도 22번이나 더 박 씨를 찾아가 총 4억8600만 원을 받아냈다. 이 돈도 고스란히 새 사업을 준비하는 데 쓰였다. 문제는 그 뒤에 생겼다. 이 씨가 받은 돈을 주지 않고 사업에 쓴 사실을 최 씨가 알아버렸고 최 씨는 이 씨를 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 이승한)는 이 씨를 횡령 혐의로 5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씨는 검찰에서 “박 씨로부터 별도로 빌린 돈”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