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아이들이 영어에 눈뜨면서 나는 또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때로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곤 했다. 용흥궁 안내판의 영어 설명을 보자. ‘This palace, in which the 25th King Chel-jong(1849-1863) of the Joseon dynasty had stayed before ascending the throne, has been reported named 「Yongheunggung palace」 which was constructed by Jeong gi-she, the governors of Ganghwa in 1853.’ 이 짧은 문장에 사소하기는 하기만 문법적으로 틀린 부분이 많다. 우선 눈에 띄는 ‘before’는 ‘until’로 고쳐야 맞다. ‘was constructed’ 뒤에는 ‘and named’를 덧붙여야 한다. 그리고 ‘governor’는 단수로 써야 옳다.
불행히도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비단 강화도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지방사적 담당자들이 역사 지식과 영어 능력을 갖춘 전문가에게 의뢰해 안내판을 작성해야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지난 10년간 이런 오류들 일부가 수정됐지만, 여전히 전국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 우리말 안내 설명은 어렵거나 틀린 것이 있더라도 각 곳에 배치된 문화해설사가 올바르게 고쳐 설명해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영어 안내문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 역사를 찾아 온 외국 관광객들에게 혼란을 줄까 걱정이다.
영어교육학자인 나에게 여행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다. 특히 해외여행은 문화체험을 통한 강의 준비 과정이다. 해외 유명 관광지를 여행하며 놀라는 사실은 자국어 설명 외에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게다가 한국어 설명 자료까지 잘 구비해 두었다는 점이다. 한류 덕택에 외국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는데,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자 오는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틀린 영어 설명문을 읽는다면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잘못 배우고 갈 게 아닌가.
그래서 국내 유적지와 관광지 안내문의 오류를 보면 바르게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한다. 잘못된 것을 고쳐 가르치려는 훈장의 습성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게 아닌지 설핏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잘못된 문화재 안내 설명을 바로잡는 일을 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현직에서 은퇴하면 카메라를 걸치고 전국의 문화유적과 명승지를 유람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사진을 찍고 고치고 수정해 담당자에게 보내면 어떨까. 한발 더 나아가 외국의 좋은 사례들까지 덧붙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여행 초기에는 할 일이 많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올바른 안내판들이 많아져 내가 할 일도 차츰차츰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고칠 안내판들이 하나둘 없어지면? 그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아내 손잡고 유적과 명승을 즐길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