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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미생지신(尾生之信)

입력 | 2012-07-12 03:00:00

尾: 꼬리 미 生: 날 생 之: 어조사 지 信: 믿을 신




약속은 약속이라는 말로 약속을 굳게 지키는 사람을 가리킨다. 세상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융통성이 전혀 없는 사람을 비판하는 말이기도 하다.

춘추시대 노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남자가 살았다. 하루는 사랑하는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약속한 시간에 그 다리 밑으로 갔지만 여인은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미생은 조금만 기다리면 오리라고 생각하여 계속 그녀를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더니 개울물이 점점 불어 오르기 시작했다. 물이 처음에는 미생의 발등에도 닿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물이 차올랐으나 미생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리 기둥을 붙들고 물살에 휩쓸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급속도로 불어나는 물에 그만 죽고 말았다.

장자 ‘도척(盜척)’ 편에서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현사(賢士) 여섯 명을 예로 들었다. 그 첫머리에 명분 때문에 수양산에서 은둔해 굶어죽은 백이숙제(伯夷叔齊)를 시작으로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문공(文公)에게 먹였으나 문공에게 배신당하자 면산(면山)에 은둔하다 불타오르는 나무를 부여잡고 죽었던 개자추(介子推)의 사례 등을 들었다. 그러고는 맨 마지막에 미생을 말하면서 “미생은 여자와 다리 기둥 아래에서 기약했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물이 불어와도 떠나지 않다가 기둥을 잡고 죽었다(尾生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梁柱而死)”고 하고는 이들을 이렇게 비판했다.

“모두 명목에만 달라붙어 죽음을 가벼이 여겼고, 본성으로 돌아가 수명을 보양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皆離名輕死 不念本養壽命者也).”

장자가 거론한 이들은 한결같이 세상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명분이나 허명에 기대어 자신에게 주어진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다. 회남자(淮南子) ‘설산훈(說山訓)’ 편에서도 “믿음이 잘못된 것(信之非)”이라고 비판한 반면, 사기 ‘소진열전(蘇秦列傳)’에서 소진만은 미생의 굳은 신의를 높이 평가했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