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령 도예가
친정 부모님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당신 딸이 아들을 못 낳아서 사돈이나 사위 보기 민망하다고 하셨다. 손녀들을 보며 “고추 하나 달고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냐”라고 한숨지으실 때마다 딸들이 그 말로 인해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심지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까지 아들 낳는 비방이니 어쩌니 하며 묻지도 않은 무례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후진 나라에 딸로 태어나서 또 딸만 낳았지?’라고 대한민국을 원망했었다. 다행히 남편은 아들이 없어서 아쉽다고 한 마디도 말한 적이 없다. 우리 부부는 합심하여 딸들에게 수없이 말했다. “너희들은 원하면 끝까지 공부한다. 결혼해도 걱정마라. 우리가 애까지 봐준다. 너희 스스로 벌어서 써라.”
나는 내 딸들을 키우면서 ‘우리 엄마도 딸들을 존중해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6남매에 친척들까지 와있던 우리 집은 항상 북적거렸다. 삼시 세끼에 간식, 도시락 싸는 것까지 만만찮은 일거리에 가사도우미도 오래 붙어있질 못했다. 일상에 지친 엄마는 늘 화가 나 있었다. 아들들에게는 조심하면서도 만만한 딸들에게는 자주 잔소리를 해대고 신경질을 부렸다. 엄마에게 아들이란, 당신의 자존심 자체요 노후의 담보였다. 내 엄마에게 딸은 노후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뽑기의 꽝’ 같은 존재였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맞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딸만 둘을 둔 오십대 중반의 엄마로서 나는 세상의 모든 딸을 응원하고 싶다. 그들이 나보다 많은 것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또 전문가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기를 소망한다. 그러니, 세상이여, 우리 모두의 딸들에게 ‘여자니까 양보하라’ ‘여자라서 곤란하다’며 딸들의 기를 꺾지 말라.
송미령 도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