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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한수원의 썩은 냄새

입력 | 2012-07-12 03:00:00


올해 공공기관 감사 평가에서 59개 기관 중 유일하게 최하등급인 E등급을 받은 곳이 한국수력원자력이다. 이명박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의 자문위원을 지낸 신우룡 씨가 감사를 맡았을 때, 납품업체 사장은 감사실장 방까지 찾아와 4000만 원을 놓고 갔다. 노무현 정권 때의 조창래 감사는 2004년 총선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왔다 낙선한 뒤 감사가 됐다. 부임 직후 이강철 당시 대통령정무특보가 운영하던 서울 종로구 효자동 횟집에서 브로커 윤모 씨를 ‘우연히’ 만나 한수원 간부들에게 소개까지 해줬다.

▷브로커 윤 씨에게 뇌물을 받은 한수원 간부 등 22명이 원전 납품 비리와 관련해 22억여 원을 챙겨 구속됐다. 원자력발전소를 책임 관리하는 공공기관이 돈에 눈멀어 안전이 의심스러운 ‘짝퉁 부품’을 납품받았다. 동료가 수사 도중 자살했는데도 뇌물은 계속됐고, 올해 2월 9일 고리원전 1호기에 전원 공급이 끊겼을 때 현장에 있던 100명의 직원들은 침묵했다. 영화라면 좀비(살아 있는 시체)들이 즐비한 공포스릴러가 아닐 수 없다. 공포영화에선 외부에서 등장한 인물이 좀비 퇴치에 나선다. 하지만 한수원은 감사부터 ‘낙하산’이어서 불가능했다.

▷공공기관 감사는 기관장보다는 책임이 덜하고, 여론의 감시는 약한 반면 대우는 깍듯해 보은인사 자리로 각광받았다. 공공기관 감사 중 정치인 출신이 김영삼 정부 24%, 김대중 정부 32%에서 노 정부에선 40%를 넘어섰다. ‘공공개혁’을 주장한 이명박 정부 역시 덜하지 않았다. 2009년 52개 주요 공공기관 감사 중 공석 2곳을 제외하고 62%가 여권과 대선 캠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이었다. 이 대통령이 2010년 광복절 때 ‘공정한 사회’를 선포한 뒤 좀 줄었다 해도 60%는 낙하산이라는 공식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김균섭 한수원 사장은 “통렬히 반성하고 간절히 용서를 구한다”며 금품 수수가 드러나면 사유와 금액에 관계없이 해임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수원 홈페이지의 네티즌광장을 보면 ‘사장님께 드리는 글’ ‘한수원은 도대체 어떤 집단인가’ 같은 글도 작성자만 열람이 가능할 뿐, 다른 사람은 읽지 못하게 돼 있다. ‘낙하산 인사’만 바뀌고 ‘좀비 문화’가 그대로라면 한수원의 부패 사슬은 끊기 어렵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