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페라 전문축제 ‘오랑주 페스티벌’ 현장
한여름 밤 고대 로마시대 석조극장에서 펼쳐진 푸치니의 ‘라보엠’. 별이 총총한 밤 돌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면 근심은 잠시 사라지고 가난한 연인의 사랑 이야기에 한껏 빠져들고 만다. 오랑주페스티벌 제공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반원형 야외극장의 돌로 만든 객석 8000석도 하나둘씩 주인을 맞이한다. 오랑주 페스티벌의 현장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축제로 1869년 에티엔 메윌의 오페라 ‘조제프’를 처음으로 공연했고 100년 뒤인 1969년 오페라 전문 축제로 자리 잡았다. 공연장 밖에서는 프로방스풍 꽃무늬 방석을 10유로(약 1만4000원)에 팔고, 무대 뒤 간이분장실에서는 의상을 갖춰 입은 성악가들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10일 오후 9시 46분(현지 시간) 고흐의 그림 ‘론 강 위로 별이 빛나는 밤’ 같은 하늘 아래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이 펼쳐졌다. 새가 지저귀고 매미가 노래하는 늦은 밤, 정명훈이 지휘하는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달콤하고 매혹적인 선율을 빚어냈다.
카페 모무스를 중심으로 한 2막은 광활한 야외무대의 장점을 한껏 살렸다. 소품을 이용해 다락방을 카페로 신속히 전환하면서 130여 명을 등장시켜 무대를 가득 채웠다. 3막에서는 영상을 이용해 흰 눈 덮인 파리 외곽을 만들어냈다.
마이크를 전혀 쓰지 않으면서도 성악가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려줬다. 페스티벌 측은 “유럽의 다른 야외극장에서 보기 쉽지 않은 30m 높이의 무대 뒤 석벽이 소리를 반사해 객석으로 잘 퍼지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로돌포가 무릎을 치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전달됐다. 이탈리아의 리릭 테너 그리골로는 단연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작은 파바로티’라는 별명처럼 청아한 미성과 부드러운 고음 처리가 돋보였다. 정명훈은 “야외 공연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곳은 특별하다. 소리가 기가 막히게 좋고 아름답다. 세종(문화회관)보다 낫다. 하늘을 보면서 연주하니 무척 좋다”고 말했다.
오랑주 페스티벌은 공연마다 티켓이 평균 80% 정도 팔려나간다. 객석 8000석을 채우는 비결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 레퍼토리로 프로그램을 꾸미되 이름난 음악가를 초청해 공연의 품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올해 레퍼토리는 ‘라보엠’과 ‘투란도트’다.
오랑주=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