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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의 ‘광고 TALK’]우유와 치맛바람

입력 | 2012-07-13 03:00:00


김병희 교수 제공

우윳값 인상은 보통 물가 인상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우윳값이 올라가면 우유를 주원료로 쓰는 빵이나 아이스크림 가격도 덩달아 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윳값을 인상한다는 뉴스는 언제나 달갑지 않을 수밖에. 일제강점기에는 우유 광고 그 자체만으로도 반가운 뉴스였다. 그렇지만 우유 광고의 이면에는 우량아로 키워 황군(皇軍)으로 쓰겠다는 조선총독부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누이우식료품주식회사(乾卯食料品株式會社)의 라구도겐 광고(동아일보 1922년 12월 24일)는 “애(愛)하라 경(敬)하라 강(强)히 육(育)하라”는 헤드라인을 아이 그림 아래쪽에 배치했다. 지면 하단에 헤드라인을 배치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증물(贈物·선물)로는 다시 업는(없는) 어느 가정에서던시(든지) 대환영이올시다 귀지(貴地·상대방이 사는 곳을 높여 부름)에서도 만히(많이) 판매합니다”라는 보디카피에서 알 수 있듯이, 선물로도 좋고 어느 곳에서나 많이 판매되고 있다며 ‘분말 순유’의 특성을 강조했다.

통통하게 살찐 아이가 사발에 가득 담긴 라구도겐 우유를 한손으로는 들기 어려워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장면은 많이 먹여 우량아로 키우라는 시각적 메시지다. 이전에는 젖이나 밥 말고는 아이에게 먹일 게 없었는데, 우유라는 신상품이 알려지면서부터 엄마들은 이유식 개념을 갖게 된다. 아이를 사랑하는 모성애와는 별도로, 아이를 우량아로 키우겠다는 생각은 1920년대 이후 급속히 확산됐다. 당시 조선총독부가 자녀를 우량아로 키우라고 적극 권장했기 때문. 곳곳에서 우량아 선발대회를 개최했고, 우유를 먹여 우량아로 키우는 것이 근대적이며 과학적인 모성애라고 치켜세웠다.

왜 그랬을까. 잘 키워 18, 19세가 되면 일왕의 충직하고 용맹스러운 병사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 시절의 우유 한 사발엔 그토록 음험한 음모 혹은 역사의 슬픈 장면이 녹아 있었던 셈. 영문도 모르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더이상 젖을 물리지 않아도 된다는 ‘근대적 각성(?)’을 하는 동시에 스스로 과학적 모성애를 발휘한다고 착각하며 아이에게 열심히 우유를 먹였으리라. 이때부터 시작된 자식에 대한 지나친 열정과 집착이 어쩌면 요즘 치맛바람의 근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