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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유럽이 버리는 年 300만t의 빵, 스페인 국민이 1년동안 먹을 양

입력 | 2012-07-14 03:00:00

◇왜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누군가는 굶어죽는가
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 발렌틴 투른 지음·이미옥 옮김
368쪽·1만8000원·에코리브르




에코리브르 제공

어릴 적 음식을 남겼을 때 부모에게서 이런 잔소리를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농부들이 피땀 흘려 가꾼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 ‘우리 때는 쌀 한 톨도 소중했다’,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떠올려 봐라’ 등 집집마다 엇비슷하다. 여리고 맑은 동심에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효과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이 책은 얼핏 머리가 굵어진 어른들을 위한 잔소리 모음집처럼 보인다. 하지만 먹는 만큼 버려지는 음식과 우리의 잘못된 소비습관에 주목하고, 낭비를 줄이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는 안내서에 가깝다. 구성 면에서는 개인적인 관찰과 사실, 영화 이야기를 섞은 ‘하이브리드 인문서’로 볼 수 있다. 영화감독 투른이 4개 대륙을 누비며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쓰레기 맛을 봐(Taste The Waste)’ 이야기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실태를 정리하는 한편, 프리랜서 언론인 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는 식량 낭비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학문적 접근을 꾀한다.

책 내용의 핵심은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의 절반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는 사실. 현장 취재로 얻은 생생한 사례와 각종 수치가 실태의 심각성을 부각시킨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지난해 5월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은 매년 300만 t의 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이는 스페인 국민 전체가 1년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전 세계 물 소비량의 4분의 1은 나중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식품을 생산하는 재배지로 들어간다.

이렇다 보니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들이 페이지마다 가득 담긴다. 외양이 깨끗한 제품을 진열하기 위해 구부러진 오이, 울퉁불퉁한 감자, 한 군데 멍든 사과들은 상자째 버려진다. 유통기한이 소비자들에게 음식을 버리는 면죄부로 작용한다는 논리도 흥미롭다. 꽉 들어찬 냉장고를 정리하며 식품을 버릴 때 유통기한은 양심의 가책을 떨쳐 버릴 수 있도록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저자는 ‘소비자는 자기가 보고 듣고 맛보는 감각보다 생산자가 표기한 날짜를 더 신뢰한다’고 꼬집는다.

생산자가 낭비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사례 모음도 참고할 만하다. 영국 슈퍼마켓 체인 세인즈베리스는 1+1 제품을 ‘오늘 하나를 구입하면 다음에 필요할 때 다른 하나를 가져가기’ 식으로 탈바꿈시켰고, 네덜란드 슈퍼마켓 체인 점보는 유통기한이 이틀 남은 물건을 진열장에서 발견하는 손님들에게 무료로 가져가도록 하는 획기적인 발상으로 폐기물을 줄였다. 이 밖에도 저자는 줄이고 재분배하고 재생하는 간단한 원칙 ‘RRR(Reduce, Redistribute, Recycle)’을 제시해 경작지에서 식탁까지 오는 유통 과정에서 낭비를 줄일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

혹시 우리는 ‘지금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구입하고 있지는 않은가.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좋다며 과일을 마구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과잉의 시대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굶어 죽어 간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낭비하는 작은 습관은 자원 고갈이나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 등의 재앙이 되어 이미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