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교수 제공
앞서 나간 현상공모 광고(동아일보 1922년 12월 1일)를 보자. 1등 1인 50원, 2등 2인 15원, 3등 4인 5원의 상금을 걸고 ‘조선 사람은, 조선 것과, 조선 사람이 만든 것을, 먹고 닙고(입고) 쓰고 살자’는 내용을 작성하도록 했다. 당선작 발표에서는 1등 없이 2등에 이광수(‘조선 사람, 조선 것’)를 비롯한 세 명, 3등에 서인식(‘조선 사람, 조선 것으로’)을 비롯한 네 명이었다. 수상자에 문인이자 언론인인 춘원 이광수와 평론가 서인식이 들어 있어 흥미롭다. 공고문을 그대로 썼고 ‘으로’가 있고 없고 외에는 똑같은데, 2등과 3등을 어찌 갈랐을까.
이광수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평론가 서인식은 ‘께오리ㆍ루가츠(게오르그 루카치) 역사문학론 해설’이나 ‘동양문화의 이념과 형태’ 같은 글을 통해 동아시아의 지향점을 모색했던 당대의 지식인. 당선작이 발표된 1922년에 이광수는 30세(1892년생), 서인식은 16세(1906년생)였다. 서인식은 중앙고보 학생이라 응모할 법한데, 1917년부터 ‘무정’을 연재했던 이광수가 왜 응모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심사위원 자격도 넘치는 등단 작가였으니 어색할 수밖에.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