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전명출 평전’ ★★★★
마늘을 훔치려다 멍석말이 매질을 당한 전명출(정승길)을 아내 순님(김선영)이 부축하고 있다. 남산예술센터 제공
작품은 ‘우리는 그 난리를 친 끝에 과연 지금 잘살고 있나’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지만 공연은 연출가 박근형 씨 특유의 유머 코드가 곳곳에 배어 있어 경쾌하다. 백하룡 작가가 경상도 사투리로 살린 맛깔스러운 대사와 표현들이 출연 배우들에게 생동감 넘치는 색깔을 입혔다.
소 스무 마리를 키우는 소박한 삶을 꿈꾸던 30세의 영농후계자 전명출(정승길)은 돈이 없어 마을의 마늘 건조장에서 밤에 마늘을 훔치다 발각된다. 멍석말이로 동네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매를 맞아 자존심을 다친 그는 부인 순님(김선영)을 데리고 도시로 떠나고,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변해간다.
하지만 빠른 성공을 위해 ‘속성’과 ‘부실’로 쌓아올린 부와 명예는 필연적인 부작용을 부르는 법. 건설업체 사장이 돼 자신이 지은 건물이 무너지고, 남의 돈을 끌어다 벌인 사업이 1997년 외환위기로 무너져 내릴 때 그는 조강지처마저 버리고 야반도주를 택한다. 끝없는 속성의 종착지는 ‘부동산 사기’다. 1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전명출은 동네사람들 땅이 4대강 개발용지라고 속여 먹는 마지막 한탕을 준비한다.
연극이 전명출을 통해 한국의 성공신화를 부실 위에 쌓은 것이라 진단하고 그와 정반대편에 있는 지고지순한 인물 순님의 입을 빌려 내놓는 제안은 다분히 순진하다. 합천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된 호수를 쳐다보는 순님은 ‘뭘 그렇게 보느냐’는 말에 이렇게 답한다. “내 오래된 미래가 있지.” 하지만 과연 순수했던 시절로의 회귀가 바람직한지 아닌지를 떠나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 : i : : 29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2만5000원. 02-758-2150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