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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출세 좇던 시골청년의 몰락 토건공화국의 맨얼굴 풍자

입력 | 2012-07-17 03:00:00

연극 ‘전명출 평전’ ★★★★




마늘을 훔치려다 멍석말이 매질을 당한 전명출(정승길)을 아내 순님(김선영)이 부축하고 있다. 남산예술센터 제공

연극 ‘전명출 평전’은 경남 합천 출신의 순박한 영농후계자 전명출의 ‘출세담’을 통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만 달러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출세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작품은 ‘우리는 그 난리를 친 끝에 과연 지금 잘살고 있나’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지만 공연은 연출가 박근형 씨 특유의 유머 코드가 곳곳에 배어 있어 경쾌하다. 백하룡 작가가 경상도 사투리로 살린 맛깔스러운 대사와 표현들이 출연 배우들에게 생동감 넘치는 색깔을 입혔다.

소 스무 마리를 키우는 소박한 삶을 꿈꾸던 30세의 영농후계자 전명출(정승길)은 돈이 없어 마을의 마늘 건조장에서 밤에 마늘을 훔치다 발각된다. 멍석말이로 동네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매를 맞아 자존심을 다친 그는 부인 순님(김선영)을 데리고 도시로 떠나고,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변해간다.

결정적으로 전명출을 바꾼 계기는 정의를 내세우며 부패한 건설소장(김세동)에게 맞서다 오히려 자신이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려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건이다. 절뚝거리며 삼청교육대에서 퇴소한 그는 도덕과 윤리를 팽개치면서 세속적인 성공으로 달려갈 준비를 마친다. “바람이 분다. 이제 이 전명출이 힘차게 날아오를 일만 남은 기라.”

하지만 빠른 성공을 위해 ‘속성’과 ‘부실’로 쌓아올린 부와 명예는 필연적인 부작용을 부르는 법. 건설업체 사장이 돼 자신이 지은 건물이 무너지고, 남의 돈을 끌어다 벌인 사업이 1997년 외환위기로 무너져 내릴 때 그는 조강지처마저 버리고 야반도주를 택한다. 끝없는 속성의 종착지는 ‘부동산 사기’다. 1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전명출은 동네사람들 땅이 4대강 개발용지라고 속여 먹는 마지막 한탕을 준비한다.

연극이 전명출을 통해 한국의 성공신화를 부실 위에 쌓은 것이라 진단하고 그와 정반대편에 있는 지고지순한 인물 순님의 입을 빌려 내놓는 제안은 다분히 순진하다. 합천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된 호수를 쳐다보는 순님은 ‘뭘 그렇게 보느냐’는 말에 이렇게 답한다. “내 오래된 미래가 있지.” 하지만 과연 순수했던 시절로의 회귀가 바람직한지 아닌지를 떠나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 : i : : 29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2만5000원. 02-758-2150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