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경기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의 주민들을 이주시키며 조성된 마을에 홑 벽돌로 지은 우리 집은 2002년 이사 올 당시에도 툭 치면 쓰러질 듯 아슬아슬한 낡은 집이었다. 당시 우리 부부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반려견 ‘나무’(리트리버)와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 집은 나무와 뒤이어 가족이 된 ‘바우’ 그리고 이듬해 태어난 나무와 바우의 새끼들까지 안전하고 신명나게 놀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졌다. 담장을 따라 트랙을 만들어 달릴 수 있는 거리를 최대한 길게 만들었고, 공놀이에 방해가 되는 조형물은 모두 치워버렸다. 바람이 잘 통하고, 비를 피할 수 있고, 한낮엔 그늘이 되는 공간,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환경. 반려견의 반응에 따라 환경을 바꿔주는 과정이 우리 부부에겐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무는 이 집에서 십 년을 살다가 개조 공사가 마무리 되던 작년 가을에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서재에 놓여진 옻칠 유골함 속에 잠들어 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다시 만나리라….
리모델링을 하면서 평소 소망하던 텃밭에서 식탁 그리고 주방까지 연결되는 공간이 생겼다. 나의 텃밭은 텃밭과 정원의 개념을 융합한 채소정원이다. 나는 평소에도 작고 소담한 꽃을 좋아하는데 채소 꽃이 그러하다. 보통은 꽃대가 서면 먹을 수 없어 뽑아버리고 다음 작물을 파종하지만 나는 꽃을 보기 위해 그대로 놔둔다. 이 시기부터 채소들은 춤을 추듯 뻗어 자라 야생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여러 해에 걸친 경험을 통해 반려 동물과의 공생을 위한 공간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를 얻게 됐다. 볕을 좋아하거나 음지를 좋아하는 식물이 따로 있듯이 생태계 속에서 각각의 선호환경이 있기 마련이어서 우리 집 식물들이 자라나는 공간도 나에겐 흥미로운 일이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기에는 2년간 공예 전반을 배우고 전공을 택하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도예, 섬유공예, 금속공예 등 공예 기초를 두루 배웠고 부전공으로 목공예를 전공했는데 참으로 좋았다. 졸업 후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내 일은 기획, 디자인까지이고 제작은 다른 이의 손으로 넘어갔는데, 늘 수작업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었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 내 집 안에 작은 작업실을 만들어 가구, 그릇, 소품들을 직접 만들며 살자고 생각했다. 내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은 정신을 맑게 만든다.
나는 인간 중심의 생활공간을 개선하고 싶다. 다른 생명과 공생하는 삶과 문화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텃밭, 반려 동물, 업사이클(재활용·친환경) 디자인은 이제 내 삶의 일부가 됐다. 앞으로는 목수가 되어 공생하는 삶, 자급자족의 삶을 살며 인생의 시간을 멋지게 가꾸고 싶다.
최정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