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 논설위원
미국 본사 인수한 스무디즈코리아
김 씨는 많은 스무디 중에 쿠노 씨의 원조 ‘스무디킹’ 제품을 특히 좋아했다. 1998년 귀국한 그는 아버지 김효조 씨가 설립한 경인전자㈜에서 이사로 일했다. 하지만 김 씨는 ‘제조업은 변화가 크지 않은 반면에 외식 등 서비스업은 경영자의 역량에 따라 브랜드를 급속히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2년 그는 뉴올리언스의 스무디킹 본사를 찾아갔다. 국내 판매권을 얻기 위해서다. 당시 스무디킹의 국내 판매권을 따려는 대기업 경쟁자가 둘 더 있었지만 직원들에게 제공되는 공짜 스무디를 협상 과정 내내 즐기는 김 씨의 모습이 쿠노 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2003년 스무디즈코리아를 창업한 그는 작년까지 연평균 64%의 무서운 증가속도로 매출을 키워왔다. 작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점은 세계 700개 매장 중 매출 1위를 했다.
이전에도 한국 판매법인이 해외 본사를 역(逆)인수한 사례는 몇 있다. 2007년 휠라코리아 윤윤수 회장은 이탈리아에서 탄생해 글로벌 기업이 된 휠라를 인수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미스터피자도 일본의 미스터피자 브랜드를 인수했다. 독일의 명품 브랜드 MCM의 한국 판매권자였던 성주인터내셔널은 MCM을 샀고 태진인터내셔널은 프랑스의 루이까또즈를 인수했다.
유로존 위기 속에서 우리 기업이 유럽 업체 인수합병(M&A)에 나선 것도 고무적이다. 최근 LG그룹은 영국 롤스로이스의 자회사를 인수해 수소연료전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LG 관계자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연료전지 사업에 진출하려면 원천기술이 꼭 있어야 한다. 자체 개발보다 인수가 더 효과적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한화그룹도 올해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독일 1위의 태양광발전 소재업체 큐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로존 위기, M&A 통한 성장 기회
유럽 기업 인수에는 미국 일본 중국이 적극적이다. 매물로 나온 기술기업이나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신흥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한 회사가 주된 타깃이다. 호황일 때 체력을 비축했다가 불황 때 싼 매물을 사들이는 게 M&A의 정석이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알짜 기업을 무더기로 헐값에 넘긴 쓰라린 경험이 있다. 이제 먹잇감 신세를 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스스로 M&A 기회를 적극 살려야 한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