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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프리즘/허승호]스무디킹 이사회 의장 김성완의 꿈

입력 | 2012-07-19 03:00:00


허승호 논설위원

1990년대 미국에서 학부 및 석사(MBA) 과정을 밟던 유학생 김성완 씨는 미국식 과일음료 스무디를 즐겨 마셨다(사실은 ‘먹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스무디는 간호사 출신 스티브 쿠노 씨가 개발해 1973년부터 팔기 시작한 제품으로 과일에 미네랄, 프로틴 등 각종 영양소를 첨가해 부드럽게 혀에 감긴다. ‘스무디’라는 이름도 쿠노 씨가 붙였다. 스무디는 큰 인기를 얻어 현재 미국에선 20여 개사가 스무디를 생산하고 있다. 제품 개발에만 몰두한 쿠노 씨가 상표권을 주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본사 인수한 스무디즈코리아

김 씨는 많은 스무디 중에 쿠노 씨의 원조 ‘스무디킹’ 제품을 특히 좋아했다. 1998년 귀국한 그는 아버지 김효조 씨가 설립한 경인전자㈜에서 이사로 일했다. 하지만 김 씨는 ‘제조업은 변화가 크지 않은 반면에 외식 등 서비스업은 경영자의 역량에 따라 브랜드를 급속히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2년 그는 뉴올리언스의 스무디킹 본사를 찾아갔다. 국내 판매권을 얻기 위해서다. 당시 스무디킹의 국내 판매권을 따려는 대기업 경쟁자가 둘 더 있었지만 직원들에게 제공되는 공짜 스무디를 협상 과정 내내 즐기는 김 씨의 모습이 쿠노 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2003년 스무디즈코리아를 창업한 그는 작년까지 연평균 64%의 무서운 증가속도로 매출을 키워왔다. 작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점은 세계 700개 매장 중 매출 1위를 했다.

2005년 한국을 방문한 쿠노 씨는 ‘김 씨 같은 경영자라면 미국 남부의 로컬 브랜드 스무디킹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김 씨 또한 쿠노 씨에게 “은퇴 시 내가 사업을 잇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달 10일 스무디즈코리아가 스무디킹을 인수한 데는 그런 전사(前史)가 있었다. 현재 김 씨는 이사회 의장으로 첫 이사회를 주재하기 위해 미국에 가 있다. 그는 나와의 통화에서 “지금 스무디킹 700개 매장 중 690개가 미국과 한국 두 나라에만 있다. 그러나 맥도널드 못잖은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만 40세 젊은 기업인의 당찬 기백이 느껴졌다.

이전에도 한국 판매법인이 해외 본사를 역(逆)인수한 사례는 몇 있다. 2007년 휠라코리아 윤윤수 회장은 이탈리아에서 탄생해 글로벌 기업이 된 휠라를 인수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미스터피자도 일본의 미스터피자 브랜드를 인수했다. 독일의 명품 브랜드 MCM의 한국 판매권자였던 성주인터내셔널은 MCM을 샀고 태진인터내셔널은 프랑스의 루이까또즈를 인수했다.

유로존 위기 속에서 우리 기업이 유럽 업체 인수합병(M&A)에 나선 것도 고무적이다. 최근 LG그룹은 영국 롤스로이스의 자회사를 인수해 수소연료전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LG 관계자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연료전지 사업에 진출하려면 원천기술이 꼭 있어야 한다. 자체 개발보다 인수가 더 효과적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한화그룹도 올해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독일 1위의 태양광발전 소재업체 큐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로존 위기, M&A 통한 성장 기회

유럽 기업 인수에는 미국 일본 중국이 적극적이다. 매물로 나온 기술기업이나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신흥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한 회사가 주된 타깃이다. 호황일 때 체력을 비축했다가 불황 때 싼 매물을 사들이는 게 M&A의 정석이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알짜 기업을 무더기로 헐값에 넘긴 쓰라린 경험이 있다. 이제 먹잇감 신세를 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스스로 M&A 기회를 적극 살려야 한다.

국내외 경제 환경이 단기간에 좋아질 것 같진 않다. 어려운 시기를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대응체제를 가다듬는 일은 경영의 기본이다. 동시에 새로운 성장기회를 찾고 위기 이후를 대비하는 노력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스무디즈코리아, LG 등의 도전이 특별히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